[데스크칼럼] 영국에서 온 편지 .. 박영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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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형! 런던에서 무역업을 시작한뒤 올해처럼 서울을 걱정하기는 처음입니다. 서울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온통 어두운 것 뿐입니다. 더욱 걱정인 것은 이곳을 찾는 상사직원들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이 회사일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앞으로 회사를 그만둘 경우에 대비해 어떻게 하면 개인사업을 잘 할수 있을까에만 관심이 쏠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다보니 수출이 늘어날리 없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겁니까.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앞날이 불안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언제 회사에서 그만두라고 할지 모르는데 자기 앞가림이라도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신청받고 있는데 과연 신청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이라는 얘깁니다. 당장은 버티더라도 오래지 않아 관둬야할 것 같다는 거죠. 이곳에 진출한 은행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에서 수만명의 은행원이 직장을 떠나야 하는 판국에 이들도 불안하기는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본인의 앞날이 불안한데 현지에 진출한 기업에 대출해줄 마음이 어떻게 생기겠습니까. 한국에서는 정부가 돈을 풀어도 기업에는 가지 않는다는데 그 이유도 자리가 불안한 은행원들이 몸을 사리기 때문이 아닐까요. P형! 지금 세계 여러나라는 경제위기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도 그중의 하나지요. 이로인해 제가 하는 비즈니스도 어려워진게 사실입니다. 한국이 잘돼야 밖에 있는 교포들도 비즈니스할게 많아집니다.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보니 이곳 교포들도 어깨가 축 늘어지는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엔 한국은 아직 경쟁력이 있습니다. 수출이 그래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올해 수출이 줄어든 나라들이 적지 않습니다. 세계전체로도 무역량이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비즈니스맨들이 다시 열심히 뛴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찾아옵니다. 이곳은 비즈니스의 천국입니다. 미국 독일 등 여러나라를 돌아다녀 보았으나 영국만한 곳이 없습니다.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 어느곳이나 영국에 있는 기업만은 확실히 믿어주는것 같습니다. 신용을 높게 쳐줍니다. 저는 20여년동안 수출업무만을 해왔습니다. 한국 상품을 내다판다는데 자부심을 갖고 일해 왔습니다. 한국이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먼저 한국을 비즈니스천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외국인투자도 살아나고 위기에서도 자연히 벗어날수 있을 겁니다. 과거에도 어려운 때는 여러번 있었습니다. 오일쇼크때 달러가 모자라 원자재를 들여오지 못할때가 기억납니다. 광주사태 이후에도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그런 역경을 극복할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국민 각자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습니까. P형! 이곳 영국이 위기를 벗어난 얘기는 여러번 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막상 살면서 보니 피상적으로 듣는 것보다 더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여기선 아직도 개혁이 진행중입니다. 꾸준하게 경제체질을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새로운 개혁이 진행중이라지요. 김대중 대통령은 이른바 DJ노믹스라는 경제철학을 내놓았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접하지 못했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함께 추구한다면서요. 새로운 개혁작업이 반드시 성공을 거두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시장경제원리가 제대로 작동할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게 만드는게 시급합니다. 한국이 아무리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비상시기에 처해 있다해도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을수만은 없습니다. 과거 역경을 극복할때 처럼 경제주체들의 경제하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상사직원들이 수출상담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해야 합니다. 은행원들을 우수한 대출선을 찾아 뛰어 다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시장경제는 경제주체 각자가 최선을 다해 뛸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줄때제대로 돌아갈수 있는게 아닐까요.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