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우 전 부총리 경제강연] 신속한 금융개혁이 '키워드'

남덕우 전 부총리는 21일 문화일보와 서울방송이 공동주최한 "외환위기원인과 처방 대토론회"에서 "18세기 산업혁명이후 약 70년의 주기로 되풀이된대불황국면을 맞게 된 것같다"며 "정부는 금융개혁에 역량을 집중하라"고주장했다. 강연내용을 정리한다. ----------------------------------------------------------------------- 우리는 외환위기에서 출발하여 금융위기로 치달았고 이제는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세계경제 또한 전반적 침체국면으로 접어들어 우리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아마도 18세기 산업혁명이후 약 70년의 주기로 되풀이된 대불황국면을 맞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국내의 사정을 보면 혼란과 침체의 터널에서 빠져 나오고 있다는 징후는 찾아보기 어렵다. 금리가 외환위기이전 수준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하나 기업들이 직면한 금융비용(이자율, 보증료, 감정료 등)은 아직도 20%선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도 중소기업은 은행대출에서 거의 완전히 외면당하고 있다. 콜금리가 한자릿수로 내려왔지만 그것은 은행들이 들어오는 자금을 기업에대출하기보다 위험도가 적은 투신사에 맡기고 투신사는 그것을 대부분 콜론으로 운용하기 때문이다. 재벌에 대한 여신편중을 시정하는 것이 개혁의 목적이지만 은행대출 회사채발행 투신사의 단기여신 등은 5대재벌로 집중되고 있는가 하면 정부는 재벌에 대한 융자한도를 설정하여 그득의 목마저 조이고 있다. 지금의 상태가 지속되면 금리가 내려도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갖느냐가 문제다. 지금 외국에서 발행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금리보다 국내금리가 오히려 더 낮은 의외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외평채값 하락은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대기업의 빅딜, 기아자동차처리가 아직 불투명하다. 세계은행이 한국정부의 구조개혁방법에 실망하여 지원을 꺼린다는 소문도 있다. 지금 외국인이 내다파는 외평채를 국내에서 한국인들이 사고 있다. 외평채를 외국인으로부터 살때에는 달러를 주고 사야 하므로 외환의 유출이따르게 된다. 금융기관이 선호하는 것은 비단 외평채만이 아니다.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이 올라가기 때문에 은행들은 기업대출을 줄이고 정부채권을 사려고 한다. 그래서 한은이 금융기관에 자금을 추가공급해도 그 자금이 다시 한은으로 되돌아온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일련의 현상들을 경제학에서는 악조정(maladjustment)현상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것은 구조개혁에 따른 과도적 현상이라기 보다는 정부와 IMF(국제통화기금)의 무리한 정책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먼저 외환위기초기에 금리인상이 지나쳤고 둘째로 금융기관에 BIS비율을 불과 2년내에 맞추라고 요구한 것부터가 무리였다. BIS비율을 맞추기 위한 은행들의 대출기피는 자금경색과 부실기업양산으로이어져 실물경제는 불황의 심연으로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80년대중반 약 6%였던 자본-부채비율이 8%로 높아지는데 약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일본도 우선 4%를 기준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정부가 총체적 개혁이라 하여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에 문제가 있는 것같다.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필자는 당초부터 금융개혁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정부의 역량을 그곳으로 집중하라고 역설해 왔다. 금융이 경제의 혈맥이기 때문이다. 만약 금융감독기준이 무리라면 단계적으로 접근하되 그 기준은 반드시 보장하도록 하면 된다. 널리 알려진 부실기업들은 도산했다는 소식이 없고 힘없는 기업들만 정리대상이 되고 있다. 어딘가 허점이 있는 것같다. 금융감독기준과 질서가 확립되지 않고 금융의 기업에 대한 대응이 애매한데정부가 두 문제를 동시에 파헤쳐놓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데서 혼란이 따르는것같다. 지금의 상태는 응급환자와 일반환자가 뒤범벅이 되어 혼란에 빠진 병원을 연상케 한다. 금융혼란을 최소화하려면 부실채권 부실기업을 은행으로부터 완전히 격리시켜야 한다. 격리된 부실채권이나 기업의 정리에는 시간이 걸려도 좋으나 은행업무의 정상화가 늦어지면 경제적 손실은 걷잡을수 없이 커질 것이다. 정부는 재정적자확대 등의 경기회복대책을 발표하였는데 재정적자는 가급적사회간접자본확충과 환경개선에 투입하기 바란다. 그러나 금융이 조속히 정상화되지 않고서는 경기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