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생존문제 함부로 다뤄도 되나

봉급생활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실직당한뒤 다른 일자리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유연하고 탄력적인 노동시장이 없는 한국에서는 특히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금융감독위원회의 인원감축요구에 반대하며 오는 29일 총파업을 예고한 9개 은행노조원들이 사회적 동의를 얻기는 어렵다. 금융구조조정에 무려 50조원의 재정자금이 들어가는 만큼 은행원들의 "일정한 희생"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원감축이라는 생존문제를 거칠고 섣부르게 추진한 금감위 자세다. 금감위는 당초 이들 9개 은행에 40%정도의 숫자를 제시하며 인원감축을 요청했다. 이에 대한 반발이 심하자 인원감축은 1인당 생산성이 선진국수준으로 높아질수 있는 수준까지 이뤄져야 한다는 모호한 기준을 들이밀었다. 은행노조의 불만은 여전했다. 다른 모든 것은 후진적인데 인원감축에만 선진국수준을 적용한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인원감축은 현재가 아닌 작년말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이미 많은 인원을 줄인 은행은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10~25%만 추가로 줄이면 된다는 얘기였다. 금감위가 당초부터 인원감축에 관한 한 일관된 정책을 갖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추진과정은 이처럼 거칠기 짝이 없었다. 실직은 절박한 생존문제다. 좀더 치밀하고 매끄럽게 대응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고광철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