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창간 34돌] 유통 : 업태영역파괴 .. '동대문 시장'

극심한 불황으로 재래시장 패션이 뜨고 있다. 브랜드 제품이 아니면 철저히 외면하던 젊은이들이 동대문이나 남대문시장 옷을 즐겨 입기 시작했다. 이제는 적은 돈으로 멋을 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동대문운동장 주변 의류도매상가는 밤마다 스무살 안팎의 젊은 이들로북적댄다. 디자이너크럽을 비롯 팀204 혜양엘리시움 우노꼬레 아트프라자 밀리오레거평프레야 등 젊은이들이 즐겨찾는 의류상가들이다. 불황이 심화되면서 동대문을 찾는 지방상인(도매고객)들은 눈에 띄게줄었다. 그러나 소매고객(일반소비자)은 오히려 늘었다. 패션에 관한 젊은이들의 인식이 바뀐 것은 불황으로 인해 급격이 구매력이약해졌기 때문. 최신 유행옷을 사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경제가 위기에 처하면서 옷을 사는데 쓸 수 있는 돈은 대폭 줄었다. 멋내기를 포기하든지, 적은 돈으로 멋을 내는 도리밖에 없게 됐다. 젊은이들이 재래시장 옷을 찾는 첫번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단순히 구매력이 약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젊은이들이 "재래시장 옷도 그런대로 입을만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수년전까지만 해도 재래시장 옷은 후줄근하고 유행에도 뒤지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특히 동대문시장의 대표상품인 숙녀복의 경우 "이젠 상당 수준에 올랐다"는 것이 젊은이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팀204에서 숙녀복을 판매하는 유영식(40)씨는 "유명 브랜드 옷과 비교하면 동대문 옷이 바느질 솜씨 이외엔 그다지 뒤질게 없다"고 말한다. 똑같은 원단을 쓰고 디자인에서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 다만 유명 브랜드 옷과는 달리 짧은 시간에 많은 옷을 만들기 때문에 바느질이 꼼꼼하지 못한 점이 재래시장 옷의 흠이라고 설명했다. 재래시장 패션의 장점은 유행을 즉시 반영하면서도 값이 싸다는 점이다. 동대문이나 남대문 상인들은 새로 만든 옷을 매장에 걸어놓고 하루 이틀 반응을 보면 팔릴 옷인지, 팔리지 않을 옷인지 정확히 분간해낸다. 팔리지 않을 옷이면 과감하게 생산을 중단하고 다른 옷으로 교체한다. 또 새로 유행하는 옷이 있으면 순발력을 발휘, 사나흘만에 매장에 내놓는다. 동대문및 남대문에서 옷을 파는 상인들은 대부분 자체공장이나 하청공장을 갖고 있다. 디자이너를 고용하고 있는 상인도 갈수록 늘어 거의 절반에 달한다. 따라서 동대문이나 남대문시장에서 옷을 사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를 하는 셈이 된다. 옷값이 싼 것은 당연하다. 재래시장 패션이 뜨면서 상가들의 품질경쟁도 뜨거워졌다. 특히 동대문 숙녀복상가들이 그렇다. 젊은이들 사이엔 상가 순위가 수시로 매겨진다. 이들에게 호평을 받는 상가는 손님들이 늘 북적댄다. 반면 나쁜 점수를 받으면 쇠퇴의 길을 걷는다. 이 때문에 각 상가는 우수상인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다. 특히 밀리오레 개장이후 동부상권과 서부상권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동대문 상인들은 지금과 같은 추세가 수년간 지속되면 재래시장 옷이 패션시장을 주름잡을 것이라고 말한다. 재래시장 브랜드가 유명 브랜드로 뜨고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날이 온다는 얘기다. 다만 양적 팽창에 따른 후유증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이 자신들의 과제라고입을 모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