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창간 34돌] 유통 : 업태영역파괴 .. '밀리오레' 돌풍
입력
수정
패션쇼핑몰 밀리오레가 동대문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8월말 개장한 이래 20세 안팎의 젊은 고객들로 연일 만원을 이루고 있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엔 교복 차림의 여학생들도 몰려나온다. 매장내 에스컬레이터는 자정을 넘긴 시각에도 줄을 서야 탈 수 있다. 고객들이 몰리면서 고층과 지하층까지 점포가 모두 찼다. 개장때까지만 해도 전체 점포의 30% 가량은 비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매장이 비면 들어가겠다는 상인이 수십명이나 대기하고 있다. 북적대던 상가마저 썰렁해져 버린 IMF시대에 밀리오레는 완전 딴세상이다. 20층 규모의 이 쇼핑몰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몸에 걸치는 것이면 무엇이든 판매하는 패션상가. 지하2층에서 지상7층에 이르는 9개층에 약2천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주력상품은 숙녀복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옷은 물론 "가발에서 신발까지" 패션과 관련된 상품이라면 없는 것이 없다. 한마디로 "원스톱 패션쇼핑"이 가능한 곳이다. 밀리오레가 극심한 불황에도 아랑곳없이 패션 쇼핑의 명소로 자리잡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동대문에서 패션 소매가 통하기 때문이다. 동대문이나 남대문은 패션에 관한한 도매시장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상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곳이다. 예전 같으면 이곳에서는 도매를 해야 살아남는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져 소매가 자리잡을 수 있게 됐다. 따지고 보면 재래시장내 패션 소매는 소비자들의 강한 요구에 따른 것이다. 수년전부터 동대문의류시장에는 소매고객(일반소비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스무살 안팎의 젊은이들이 옷을 사러 이곳을 찾았다. 동대문에서는 최신 유행옷을 도매가에 버금가는 싼값에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우리 경제가 위기에 처한뒤 동대문을 찾는 소매고객이 부쩍 늘었다. 물론 밀리오레의 성공에는 다른 요인들도 작용했다. 매장 중앙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 층간 이동을 편하게 한 점도 요인으로 꼽힌다. 백화점을 연상시킬 정도로 매장을 산뜻하게 꾸민 점, 라이벌인 인근 거평프레야가 관리회사의 경영위기로 인해 흔들리고 있는 점도 플러스요인으로 작용하고있다. 올들어 성창F&D가 밀리오레에서 소매를 하겠다고 밝혔을때 동대문 상인들은 "모험"이라고 말했다.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하거나 "제살을 깎아먹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방상인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곳에서 이들의 고객인 일반소비자들에게 옷을 팔면 지방상인들이 설땅을 잃어 결국 도매시장도 죽는다는 논리였다. 밀리오레의 패션 소매가 현재와 같이 계속 잘 된다면 패션유통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적어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패션 소매업자들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서울 외곽에서 "비명"이 나오기 시작했다. 동대문이나 남대문에 밀리오레와 같은 패션쇼핑몰이 몇개 더 들어서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심야에 커다란 옷가방을 메고 동대문을 누비는 지방상인들의 발걸음은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자신들의 매장으로 와야 할 젊은 고객들을 헤집고 다니며 옷을 사는 마음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이들은 패션유통에 큰 변화가 닥쳐오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