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창간 34돌] 기업 : 불황 이겼다 .. '랭스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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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스필드 골프클럽은 수출 단가가 국내시장 판매가보다 높다. 보급형 1세트(13개짜리)가 국내시장에선 98만원. 하지만 수출가는 절반이상 비싼 1백60만원. 국내 시판가격이 원가수준이라고 하니까 수출로 돈을 번다는 얘기다. 연간 3천억원에 달하는 국내골프용품시장에서 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밖에 안되는 현실을 벗어나려는 전략이라고 양정무(39)사장은 설명한다. 국내 골프용품 업계 선두주자 랭스필드에선 IMF관리체제가 드리운 불황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다. 수출은 물론 내수에서도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매출만 가지고 따지면 2위 업체를 2배 차이로 따돌리고 1위자리를 굳혔다. 그것도 순전히 자체브랜드 제품으로만 그렇다. 다른 업체들이 수입품까지 함께 취급하는 것을 감안하면 비교할 필요조차 없는 부동의 국내 1위다. 올해 매출은 20% 늘어난 70억원. 수출은 3배나 많아진 3백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이 회사는 얼마전 신입사원을 10명이나 뽑았다. 또 경기도 일산에 대규모 생산라인을 건립중이다. 작지만 알찬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랭스필드의 성공 비결은 자사브랜드 수출이다. 현재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30개국에 수출하고 있지만 남의 상표를 달아 내보내는 것은 한 자루도 없다. 물론 양 사장도 잠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수출을 한 적이 있긴 했다. 대전엑스포 때 유일한 공식 골프용품 업체로 지정되면서 알려져 지난 93년 처음으로 OEM 수출을 해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바이어 점검을 위해 유럽에 갔다 분통이 터져 곧 그만두고 말았다. 상인들이 골프클럽에 붙은 "메이드 인 코리아" 딱지를 떼고 팔더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10만원에 수출한 클럽헤드가 상표만 바뀌어 수십만원에 역수입돼 화가 나던 차에 그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양 사장은 말한다. 자기 상표가 아니면 클 수 없다는 신념으로 그 뒤론 "랭스필드"만을 고집하고 있다. 심지어 자기 브랜드를 가진 프랑스 바이어의 마음을 움직여 랭스필드 상표로 바꾸도록 한 적도 있을 정도다. 양 사장은 "OEM방식으로만 수출했다면 쉬웠겠지만 랭스필드란 이름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랭스필드의 성공을 얘기할 때 맞춤생산도 빼놓을 수 없다. 고객의 키와 몸무게 근력 손모양 습관까지 정확히 계산해 제품을 만들어낸다. 고객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돈을 돌려주는 환불 전략도 색다르다. 이런 양 사장이지만 큰 시련을 겪은 적이 있었다. IMF보다 더 매서운 문민정부 출범이었다. 골프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판매가 격감했다. 국가경제에 암적인 사업으로 인식되면서 은행 대출까지 끊겼다. 그는 이 위기를 대대적인 "아웃소싱"으로 풀어갔다. 2백명에 달하던 직원 가운데 20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내보냈다. 대신 중견 간부를 대상으로 샤프트와 헤드등 부품과 모델별로 라인을 떼어 협력업체로 독립시켰다. 비용 절감은 물론 저마다 생산성 향상 노력을 치열하게 벌였다. 품질도 좋아졌다. 수출길도 따라서 열렸고 위기를 넘겼다. 랭스필드의 슬림화와 무차입경영은 이때 자리잡은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