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창출 캠페인] (10) '영국의 성공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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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민영화의 성공적 사례는 단연 영국이 꼽힌다. 이른바 "영국병"에 신음하면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영국을 살린 직접적 계기는 다름아닌 공기업 민영화였다는게 일반적 평가다. 비록 "신자유주의 확대로 인해 빈부격차만 확대시켰다"는 혹평이 없는건 아니지만 영국의 민영화경험은 주목할만한 점이 많다. 영국의 공기업 민영화는 지난 79년에 시작됐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수상의 보수당이 집권하면서부터다. 목적은 공기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재정을 확충하는데 있었다. 물론 노동당의 정치적 기반인 공공부문을 축소시키려는 의도도 없지 않았다. 영국 정부의 강한 민영화의지는 수익성이 높은 제조업부터 민영화시킨 점만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수익성이 높은 제조업을 매각한 후 공익사업도 민간기업에 넘겼다. 민간과 경쟁하는 공기업들은 무조건 처분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민영화된 공기업은 40여개. 벌어들인 돈만 7백50억달러가 넘는다. 이러다보니 각종 개혁에 필요한 자금을 국민 호주머니에서 조달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파업 등 노조의 적지 않은 반발이 있었지만 60만명의 인력이 민간부문으로 옮겨갔다. 매각방식은 큰 기업의 경우 증시를 통한 공모방식을 활용했다. 모든 국민들에게 주주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규모가 작거나 경쟁체제에 편입된 기업은 서둘러 팔았다. 영국 철도 국립전력공사 등은 사업을 쪼개 판게 특징이었다. 민영화의 효과는 오래지 않아 나타났다. 만성 적자에서 허덕이던 영국항공(BA)은 대대적인 경영혁신을 통해 수익성높은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주주로 참여했던 국민들은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됐다. 기업의 경쟁력이 생기다보니 매년 신규인력을 뽑을 수 있었고 일자리창출효과도 대단했다. 영국에서는 79년이후 89년까지 9백만명의 국민이 주주가 됐다. 당연히 노조원의 목소리보다 주주의 권익에 따라 기업이 움직이게 됐다. 민영화 과정에서 투자은행도 활성화돼 금융도시인 런던은 호황을 맞았다. 물론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공익성격이 강한 기업도 매사를 돈으로만 따졌다. 장사가 안되는 곳에서는 철도 우편 등의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정부는 이같은 현상을 각종 법을 동원해 방지했다. 때론 정부가 지닌 황금주(Golden share)를 활용, 민영화된 기업을 감시하기도 했다. [[ 영국 공기업 민영화 일지 ]] ( 기업 - 연도 - 특징 및 비고) 영국석유(BP) - 1979 - 최초의 민영화, 직접매각 영국항공(BA) - 1971 - 제조업체자본의 51.6% 매각 전신전화국(Cable and Wireless) - 1981 - 단계적 매각 83년에 추가매각 방사능화학약품제조회사 - 1982 - 완전매각 국립화물컨소시엄 - 1982 - 기업관리자 및 근로자 대상매각 영국항만연합(ABP) - 1983 - 매각을 통한 재원조달로 설비투자 영국국영호텔 27개 - 1983 - 철도회사(BR) 소속이었으나 각각 분리매각 영국통신(BT) - 1984 - 대규모 매각(주식가치 40억파운드 가량, 2천4백만명의 일반국민이 매수참여) 주식신용판매방식 도입, 경쟁도입후 민영화, 조정위원회를 두어 BT의 독점권 악용 방지 영국가스공사(BG) - 1986 - 분리매각이 아닌 전체 매각 비커스 조선소 - 1986 - 근로자 지방은행 지역주민의 컨소시엄이 매수 롤스로이스 - 1987 - 2차대전후 국유화했었음 국립버스회사 - 1987 - 부문별 매각, 첫해 13개 영국공항청 - 1987 - 총선 이후에도 지속된 민영화, 서로 다른 매수자에게 서로 다른 가격으로 매각 국립전력공사(National Grid) - 1990~91 - 12개 지역전력공급회사로분리후 개별 매각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