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프로] (27) 제2부 : <15> '서체 디자이너 업계 현황'

한글 서체디자인(타이포그라피:typography)은 영어 등 외국어에 비해 훨씬어려운 작업이다. 영문폰트는 소문자와 대문자를 합쳐 52자만 만들면 된다. 한글은 초성(첫자음) 19자, 중성(모음) 21자, 종성(받침) 27자를 합해 모두 67자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완성형의 경우 최소 2천3백50자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다 해당 한글폰트에 맞는 영문과 부호 94자도 별도 제작해야 한다. 영어 한 폰트를 만드는 것보다 50배 이상의 글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다. 글자모양이 복잡하고 글꼴끼리 균형이 맞아야 하기 때문에 영어 한 폰트를개발하는 것보다 수십내지 수백배의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 짐이 고스란히 국내 서체디자이너들에게 지워져 있다. 한글 폰트 한 벌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8개월~1년 정도 걸린다. 실제 제작기간인 8개월 외에 3개월 정도는 디자인 기획 단계 작업으로 가독성 보편성 심미성 등에 대한 시장조사 과정을 거친다. 이후 8개월 동안 아이디어 스케치와 크리틱 과정을 거쳐 한벌의 서체가 완성된다. 서체디자이너은 예술가적 창조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뤄야 하고 수만가지 조합을 머리속에서 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기능도 필요하다. 한 사람이 하나의 서체에 매달리기 때문에 철저히 개인적인 작업이다. 동시에 상당히 비밀스런 일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각사의 서체디자인실은 "관계자외 출입금지"다. 재택근무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작업중인 신서체는 글자 몇글자만 유출되더라도 즉시 중단된다. 그만큼 베끼기가 쉽기 때문이다. 국내 서체 시장은 지난해 기준 1백50억~2백억 정도로 추산된다. 80년대말 이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IMF의 영향이 서체디자인업계에까지 미쳤다. 주고객인 대기업들이 홍보물, 사내 인쇄물을 축소하면서 새로운 서체의 수요가 뚝 끊겼다. 새 서체를 개발할수 있는 기자재도 환율상승 여파로 수입이 거의 중단됐다. 서체를 만들어도 팔 곳이 별로 없는 것이다. 올 시장규모는 지난해의 20%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는 이 같은 현상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개인 사용자를 겨냥한 서체개발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개인용 서체는 아직 수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문화산업으로서의 중요성을 인식해 정부가 지원해 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