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프로] (36) 제3부 : <4> '부동산 컨설턴트'..이문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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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겐 "카리스마"가 있다. 청중을 사로잡는 힘은 무대위의 배우보다 강하다. 방송이나 강의에 나가면 수십명의 고정팬이 따라 다닌다. 그러나 그녀는 "꽃"이 아니다. 치밀한 이론과 막힘없는 화술로 청중을 압도하는 실력파다. LMS부동산컨설팅 이문숙 사장. 얼핏보면 30대 중반의 여느 전문직 여성과 다를바 없다. 뒷거래와 술수가 만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부동산시장과는 인연이 없어 보인다. 부동산업계 특성상 "젊은 나이"와 "여성"이란 점은 치명적인 핸디캡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녀는 요즘 "뜨는" 신데렐라다. 부동산 재테크와 자산관리 분야에서 국내 1인자로 통한다. 이런 명성 덕분에 개인 시간이 거의 없다. MBC KBS YTN 리빙TV 등 각종 전파매체에 등장하는 고정출연자, 건설업체 금융기관에서 가장 선호하는 강사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쇄도하는 강의 요청으로 보름정도의 스케줄은 항상 꽉 차 있다. 최소한 한달전에 강의를 부탁해야 겨우 시간을 낼 정도다. 금녀의 벽을 허물고 정상에 우뚝 선 이 사장. 일에 대한 열정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성공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졸업후 10여년간의 사회생활은 그녀가 얼마나 열정적인 여자인지를 대변해 준다. 한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88년. 우연한 기회에 부동산에 발을 딛게 됐다. 이른바 "운동권" 출신이었던 그녀가 과선배의 권유로 부동산전문지 "부동산뱅크"에 입사한 것. 이 곳에서의 8년은 최고가 되기 위한 자기와의 투쟁이었다. 수면시간은 하루 3~4시간. 남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이 최고가 될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자투리 시간에는 어김없이 부동산 관련서적을 탐독했다. 일이 끝나면 대학원(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과 어학원을 다녔다. 못다한 공부를 하다보면 새벽 3시를 넘기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같은 노력은 서서히 결실을 맺었다. 입사 3년이 지나자 회사안에서는 더 이상 따라올 전문가가 없었다. 명쾌한 논리와 해박한 지식으로 선후배들을 압도했다. 최연소 편집장은 그녀를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4년동안 역임한 편집장 시절,그녀는 "억척이"로 통했다. 잡지의 편집방향을 정하는 바쁜 일과속에서도 방송출연, 저술활동, 세미나 강연을 병행했다. 새로 생긴 부동산컨설팅부의 책임자로서의 1년은 시야를 넓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수십건에 이르는 개발컨설팅 업무를 진두지휘했다. 전문지 기자에서 재테크 전문가로 다시 태어난 계기는 96년 출판한 "부동산 재테크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란 책. 서점에 나오자 마자 경제.경영부문 베스트셀러가 됐다. 7만권이 팔려 인세수입만 7천만원에 달했다. 출판이 성공하자 방송사의 섭외가 줄을 이었다. 그녀의 스타기질은 방송에서 특히 빛났다. 일반인들이 어렵게만 느끼는 부동산 문제를 쉽고 시의적절하게 짚어주어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주는 기자란 직업의 강점을 살린 것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반신반의하던 방송사 간부의 우려를 순식간에 잠재웠다. 30대 중반에 연 1억원 이상을 버는 "예비재벌"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 사장은 지난해 부동산뱅크를 나와 개인 사무실을 열었다. 회사이름은 LMS부동산컨설팅. LMS는 물론 자신의 영문 이니셜이다.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다. 지금은 주로 해외교포들의 국내재산을 위탁맡아 유망 부동산이나 고수익 금융상품에 투자를 대행하고 있다. 여건이 성숙되면 자산관리사업을 국내인으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그녀는 요즘 국제금융 법학 등을 공부하는데 열심이다. 부동산시장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사회를 움직이는 다양한 "힘"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부동산을 감으로 진단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철저한 분석과 이를 바탕으로 한 개발의 시대가 이미 도래했지요" 글로벌 시대에서 부동산은 그냥 끌어안고 있으면 되는 "움직이지 않는(부동)물건"이 아니란 지적이다. 금융과 연계한 개발을 통해 부동산을 "가치를 창출하는 살아 움직이는 자산"으로 만드는 일. 신세대 부동산컨설턴트인 그녀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