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그린벨트 해제 신중하게..박영배 <사회2부장>

과거 우리 위정자들의 가장 큰 병폐는 한건주의였다. 그리고 실적주의였다. 이는 곧 졸속으로 이어졌고 그 여파는 두고두고 국민들의 짐이 되곤했다. 오늘날 모든 국민들을 고통속으로 몰아넣은 IMF 사태도 위정자들의 이러한의식의 산물이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지금 정부는 또 하나 결단을 내려야 할 중대한 순간에 와있다. 바로 그린벨트조정 문제이다. 그런데 이 문제도 예외없이 졸속으로 진행되는 느낌이다. 대통령이 시한을 정해버린 탓이다. 앞으로 스케줄은 이렇다. 24일까지 단일 시안마련, 12월 한달동안 공청회 세미나등을 통한 각계 의련수렴, 연말까지 조정기준확정, 내년 1월부터 6개월동안 국토개발연구원등 4개 국책연구기관의 환경영향 평가, 내년 하반기 이후 각 지자체별로 조정작업실시. 이런 일정이라면 참으로 한눈 한번 팔 겨를이 없이 숨가쁘게 달려야 한다. 30년 가까이 성역처럼 금기시 돼왔던 그린벨트를 전면적으로 재조정하면서 시한을 못박고 이런 스케쥴로 진행되고 있는 사실에 정책관계자들조차도 고개를 내젖는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린벨트였던 만큼 그 해제를 둘러싼 의견은 백가쟁명이다. 그린벨트내에 사는 이해당사자인 주민들은 물론이고 행정당국 환경론자 할것없이 제각각 목소리를 한껏 높이고 있다.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이 혼란은 그린벨트 대폭해제를 선거공약으로 내건 김대중대통령이 당선된이후 내내 계속되고 있다. 그린벨트 전면재조정을 앞두고 걱정이 앞서는 것은 다음 몇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국가 백년대계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사항이 너무 소홀하게 다루어지고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71년에 도입된 그린벨트제도는 그동안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 기본틀을유지해 왔다. 정치적인 격랑을 여러번 거치면서도 변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정책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의 비대화를 억제하고 환경을 보호하고 있다는 순기능적인 면이 부각돼어느 누구도 이를 거역할 수는 없었다. 선거 때마다 그린벨트를 대폭 해제하겠다는 선심성 공약은 남발됐지만 번번히 공약으로 끝나곤 했다. 그러나 이번은 사정이 다르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그린벨트도입 당시와는 여건이 현저하게 달라진 것이다. 충분한 검토없이 도입된 제도여서 불합리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차제에 다시 그리겠다는 것이다. 그린벨트의 원조라고 하는 영국에서는 그린벨트를 지정하면서 10년이상의 준비작업을 했다. 어차피 조정할 바에야 충분한 시간을 갖고 문제점을 짚어보고 또 짚어봐야한다. 둘째는 그린벨트를 푸는 기준이 합리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앞으로 후대들에게 환경을 파괴했다고 비난받는 선대가 돼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린벨트는 한번 손댔다하면 겉잡을 수 없이 파괴될 개연성이 아주 높은 사안이다. 따라서 엄정한 환경영향평가에 따라 선을 그어야 한다. 도시계획상에도 꼭 필요한 곳만 풀어야 한다. 특히 서울 부산 대구등 인구가 과대집중된 곳은 정말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또 한가지 벌써부터 우려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들이 개발을 앞세워 혹은 세수증대를 위해 그린벨트를 소홀히 할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셋째는 해제니 비해제니 하는 흑백논리로 그린벨트를 접근하지 말자는 것이다. 개인의 재산권과 공공의 이익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내야 한다. 비해제의 경우에도 녹지의 활용방안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야외음악당을 건축한다든지, 잔디구장을 조성한다든지, 조깅코스를 만드는것 등이다. 개발권양도제의 도입도 고려해 봄직하다. 그린벨트는 푸는게 능사는 아니다. 요체는 어떻게 실천해 나가냐 하는 것이다. 정책담당자들이 민원이 두려워 지자체들의 반발이 두려워 형평성을 강조한다면 나눠먹기식이 될 수 밖에 없다. 개발을 한다해도 환경친화적인 개발을 정착시킨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함은물론이다. 그린벨트제도개선협의회가 이러한 문제점들을 심도있게 논의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위원들간에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돼 공통된 의견을 도출해 내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위원은 그린벨트해제가 초래할 영향을 정밀 평가하려면 최소한 2년은 소요된다고 말한다.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그린벨트를 풀면 서울의 인구가 2천만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있기도 하다. 어찌됐건 어떠한 명분으로도 그린벨트의 참 의미가 퇴색돼선 안될 일이다. 이러러면 어느 누군가가 나서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시간에 쫓겨서는 안된다고.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