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스크린] '아름다운 시절'..어릴적 아버지가 그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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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모 감독의 데뷔작 "아름다운 시절"이 주말 개봉된다. 하틀리-메릴 국제 시나리오 콘테스트 그랑프리수상(95년), 칸영화제 감독주간 공식초청작선정, 동경영화제 금상수상(98년) 등 완성되기 전부터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아온 작품. 구상에서부터 11년, 촬영필름을 보완하는 후반작업에만 9개월, 장면마다 현장리허설을 20여회나 반복하며 만든 인내의 결실이기도 하다. 감독은 부친이 사망하며 남긴 일기장을 읽고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부모세대가 험난한 현대사를 어떻게 살아왔을까"를 61년생인 감독이 묻고 그 해답을 모색해간다. 영화는 지난 52년 6.25전쟁이 장기전으로 빠져들 무렵의 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군장교와 사귀는 딸을 둔 덕에 군속으로 취직자리를 얻은 아버지, 미군의아기를 임신했지만 끝내 버림을 받는 누나, 먹거리를 얻기 위해 몸을 파는 문간방 아낙, 포로수용소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그의 남편, 우연히 어머니의 매춘장면을 보고 방아간에 불을 지른뒤 어디론가 사라진 친구, 그를 위해 빈상여로 장사를 치뤄주는 동네아이들, 공산군에게 가족을 잃었지만 사람을 해꼬지하지는 못하는 여린 여선생 등이 등장인물이다. 감독은 궁핍했던 시절의 고향사람들을 주인공 성민이를 중심으로 그려간다. 순진한 어린이의 눈을 통해본 세상살이란 발상은 전쟁영화의 단골형식이지만 영화는 이를 뛰어넘는 서정성과 깊이를 담고있다. 비극적인 상황에 슬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독은 왜 "아름답다"(영어제목은Spring in my hometown)고 말했을까. 아마도 고난과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보통사람들의 생명력에 주목한 것 같다. 역설적으로 비극성을 강화하는 효과도 노렸다. 다른 실마리는 사물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카메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화는 고향의 산과 들을 액자그림처럼 펼쳐놓고 그속에서 사람을 작게 그림으로써 무심한 자연이 삶의 고단함을 걸러내게 만들었다. 가치를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는 신중함, 삶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겸손함이다. 그러나 역사와 개인은 기억속에서 박제된 것처럼 퇴화돼 버렸다. 영화가 한국적 작가주의 영화의 미덕을 가졌으면서도 답답하고 치열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는 물건을 빼돌리다 미군에서 쫓겨난 성민의 가족이 다른 마을로 이사가는 장면으로 매듭지어진다. 감독은 이들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보여주지 않은채 그 대답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놓는다. 안성기 송옥숙 배유정 유오성 오지혜 등이 출연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