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업 금융계좌추적 문제 많다 .. 최명근 <교수>

최명근 금융소득종합과세의 부활을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계좌추적권을 공정거래위원회에도 3년간 한시적으로 부여한다는 보도도 있다. 전자는 뼈가 빠졌던 금융실명제의 기능을 되살려 이를 완성시키는 정책이다. 반면 후자는 금융실명제를 받치고 있는 두개의 축 중 하나인 비밀보장을 푸는 조치인 것이다. 그리고 계좌추적권의 행사가 실효성이 있으려면 금융실명제의 착실한 실시가전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실명제를 환골탈태시킨 집권당이 지금와서는 금융계좌의 추적권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은 혼란스러워 한다. 금융소득종합과세를 다시 부활시킨다는 논의가 가까운 시일안에 입법되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한다. 그저 논의로 그칠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차명거래를 차단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금융실명제는 내실없는 허울만 있다. 여기에 가세하여 금융계좌의 추적권을 공정거래위에 부여하여 비밀보장의 빗장을 풀면 특히 기업의 금융거래는 위축되고 나아가 기업의 차명거래는 더욱 촉발될 것이다. 공정거래위가 특히 재벌기업집단 내의 부당내부거래를 색출하는데 계좌추적권은 가장 편리한 방법일 수 있다. 그리고 기업의 구조조정을 단시일 내에 완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편의적 수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편의적 수단을 원하는 기관은 공정거래위만이 아니다. 금융실명법이 인정한 계좌추적권 외에도 이미 감사원의 감사대상 금융기관의회계감사,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거래확인 등에서 금융거래의 비밀보장이 손상되어 있는 상태이다. 여기에다 공정거래위에 또 계좌추적권을 인정하면 제2.제3의 다른 기관들도 잇달아 계좌뒤지기에 매력을 느끼고 이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금융실명제를 받치고 있는 축중 하나인 금융거래의 비밀보장은 거의 무너지고 만다. 감시적 규제적 행정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가장 손쉬운 방법이 계좌추적권이다. 때문에 이를 허용받은 행정기관은 그러한 행정편의에 안주하여 다른 창의적 업무의 개발을 등한히 하게 될 것이다. 또한 금융거래에 대한 비밀보장을 안전하고 엄격하게 정착시켜야 할 이유는 우리 사회의 역사성에 있다. 헌법은 국민의 재산권 보장을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의 현대사에서는 이러한 기본권이 여러번 굴절되었다. 5.16, 그리고 5.17의 군사적 변란 등을 겪으면서 많은 재산을 가진 계층이 체험한 일을 회고하는 것으로 그 굴절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영장없이 연행되어 공포분위기 속에서 국가헌납이라는 명분의 각서 한장으로엄청난 재산권을 침해당한 일이 바로 그것인 것이다. 재산가들은 금융거래에서도 그러한 악몽을 연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금융거래에 대한 비밀보장은 그 예외를 극소화시켜야 금융거래가 정상화되는 실명제를 성공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금융거래의 비밀보장은 사생활의 비밀을 보장받는 국민의 기본권에 속한다. 이러한 기본권의 제한은 공공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도 그 제한은 최소한의 한계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행정편의를 위하여 계좌추적권을 여기 저기에 허용, 비밀보장의 빗장을 푸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하다. 정부가 금융감독위를 통해 공정거래위가 계좌추적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다든가, 그 권한을 3년간만 한시적으로 허용한다든가 하는 것이 사생활기본권의제한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표시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금융실명제의 양축 중 하나를 붕괴시키는 조치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러한 조치는 금융실명제를 먼 장래에도 실현불가능하게 하는 역사의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평가된다. 그리고 금융실명제를 착실하게 정착시키는 조치는 게을리하면서 행정편의에 초점을 맞추어 계좌추적권만을 원하는 것은 명백한 정책상의 자기모순이다. 정부는 다시 생각하기 바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