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역학 이야기] 정감록 (2)

성철재 정감록은 그 명칭도 다양하다. 정이감여론, 정이문답, 정감록, 감결, 정인록 등을 들 수 있다. 혹자는 우물정자로 바꿔 정감여록이라 하기도 한다. 명칭이 다양한 만큼 그속에 숨어 있는 내용도 다양한 각도로 해석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함을 알 수 있다. 비기 혹은 비결은 비밀스런 기록을 말한다. 일반 민중들이 알아선 안되는 내용이기에 대개 통치권을 장악한 군주들에게만 몰래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도선국사가 저술한 도선비기도 왕건에게만 전해졌다는 설이 있다. 따라서 민중에 널리 유포된 비결들은 가치의 측면에서 그다지 논할 바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도 몇백년의 세월을 거슬러 오늘날까지 숨을 쉬는 데는 그나름의 까닭이 있을 것이다. 대개의 비결서들은 일반인들의 지식체계를 뛰어 넘거나 혹은 거스르는 야릇한 상징체계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비의는 뜻을 알 수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도록 고안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보부의 암호체계가 자폐아동의 눈에만 띄는 이치와 비슷하다고 할까. 정감록에도 이러한 면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문적으로 이를 연구한 학자들의 견해는 보잘 것 없는 후대의 위작이라는 것으로 중론이 모아진다. 고려를 얘기하며 조선초기에 개명한 지명이 등장하기도 하고, 조선초 이루어진 도참서의 분서갱유 때 정감록은 보이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가 그러한 결론을 뒷받침한다. 광해군이나 인조 이후의 모든 혁명운동에는 거의 빠짐없이 정감록의 예언이 거론되었다. 곧 국정의 문란과 끊임없는 전쟁,그리고 당쟁의 틈바구니에서 허덕이던 백성들에게 쇼펜하우어식의 새로운 생의 의지를 불어넣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점에서 높이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반면 우매한 백성들이 이책의 예언에 따라 십승지지의 피난처를 찾아 나서고 사이비 종교인들이 악용한 점은 분명한 폐단이라 할 수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