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J 캠페인] 제2부 : (1) 미국 .. '8백만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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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백만개(EMJ: Eight Million Jobs)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지난 92년 미국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가 내세운 공약 1호였다. 성인 10명당 한명 꼴로 불어나 있던 실업병을 대대적인 "일자리 창출"로 퇴치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 경제는 한마디로 위기 상황이었다. 80년대 말 6백50만명선에 그쳤던 실업자가 92년에는 1천만명선에 육박했다. 실업률은 5%대 초반에서 7%대로 급상승했다. 제너럴 모터스(GM) IBM 시어즈 로벅 등 대형기업들부터 중소기업들에 이르기까지 다운사이징이라는 이름의 정리해고붐이 한창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실업률 10%를 기록했던 80년대초의 악몽이 재현되는 분위기였다. 대통령에 당선된 클린턴은 취임 2년만에 3백만개 가까운 일자리를 새로 만들었다. 96년 치러진 선거에서 거뜬히 재선될 수 있었던 것도 EMJ플랜 덕분이었다.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24년만의 최저 수준인 4.6%선. 마찰적 실업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완전 고용에 가까운 수준이다. 클린턴 행정부의 "EMJ 플랜"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였다. 때마침 불어온 인터넷 혁명 등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클린턴 행정부가 "EMJ 6대 액션 플랜"의 간판으로 내걸었던 것은 적극적인 외국기업 투자유치였다. 신기술 및 관련산업 육성과 유망 중소기업 발굴 및 육성도 실천계획의 2,3과제로 포함됐다. 외자유치는 클린턴 행정부가 각 주 단위의 지방정부와 함께 핵심적으로 추진한 과제였다. 하버드대 교수 출신으로 클린턴 1기 행정부에 참여한 로버트 라이시 노동부 장관은 "누가 미국 기업인가(Who is Us?)"라는 제목의 유명한 강연에서 "기업의 국적(owned by)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기업이 지금 어디에 근거를 두고(based in) 고용을 창출하느냐가 "우리 기업"을 판별하는 1차 잣대"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93년이후 미국은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 일본의 도요타와 혼다,네덜란드의 필립스 등 해외 유수 대기업들의 대형공장을 잇달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92년까지만 해도 연간 2백억달러에 못미쳤던 외자 유치규모가 94년 4백51억달러, 95년 5백88억달러, 96년에는 7백65억달러로 급증했다. 작년에는 9백7억달러를 기록한 데 이어 올 상반기중에만 4백60억달러어치를유치했다. 올 전체로는 1천억달러를 돌파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신기술 및 관련 산업에 대한 집중육성도 빼놓을 수 없는 EMJ의 핵심 프로젝트였다. 클린턴 행정부는 93년 이후 1백억달러 안팎의 민간 과학 및 기술지원 예산을편성해 관련분야의 고부가가치 일자리 창출을 유도했다. 정보 고속도로(information super highway)프로젝트 등을 통해 매년 수만개의 새로운 기초 및 응용 과학분야 일자리가 속속 탄생했다. 35만개에 이르는 중소 기업들에 대한 지원도 EMJ의 골격을 이루었다. 중소기업은 92년 기준으로도 6백만명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중소기업들의 투자 및 연구개발(R&D)에 대해 대대적인 세금 감면과 자금지원에 나섰다. 이와함께 산업 인프라 확충을 위해 기존 교통 인프라의 유지.보수는 물론 차세대 고속철도, 정보 하이웨이, 환경 인프라 구축 등을 적극 추진했다. 또 애팔래치아 등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의 개발을 통한 고용창출에도 눈을 돌렸다. 이를 위해 94~98회계연도 동안 35억달러의 재정 자금을 집중 투입하는 특별개발지역(empowerment zone) 9곳을 선정하기도 했다. 클린턴 행정부가 EMJ 플랜을 추진하면서 한 순간도 놓치지 않았던 대원칙은 민간 창의를 최대한 유도하기 위한 과감한 규제혁파였다. 이에따라 앨 고어 부통령 직속으로 규제혁파 위원회를 설치해 분야별로 규제의 틀을 완전히 해체해 나갔다. "일자리 창출의 엔진(the engine of job creation)은 민간부문이며 규제혁파가 1차 과제"라는 게 클린턴 행정부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