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또다른 관치금융..김영진 <서울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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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빛은행의 임원 선출과정을 지켜보면서 온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는 금융구조조정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않을 수 없다. 대학에서 금융기관경영을 강의해오면서 우리 금융산업발전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필자로서는 앞으로 이런 식으로 문제들이 처리된다면 금융개혁이 실패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몇십년간 고도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전기를 마련,금융기관이 맡은 중개기능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면에서 금융산업구조조정은 그 의미가 크다. 특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은행들 사이의 짝짓기는 구조조정의 중요한 사안임에는 틀림없다. 한국적 현실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은행산업의 개혁을 추진하겠다는데는이론적으로 논쟁이 있으나 세계적인 추세를 감안하면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고생각한다. 그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은 우리 은행산업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다. 과거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는다는 점에서 두 은행의 합병에 거는 기대가 더욱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한빛은행의 행장 선출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던 기대가 무참히 무너지는구나 하는 걱정을 하게된다. 관치금융이 은행산업 낙후성의 가장 큰 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출발하는 은행의 인사 결정에 있어 아직도 정부의 방침 또는 고위층의 개입같은 구시대적행태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이 자신들의 각본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편법을 써서라도 기득권을 유지해야겠다는 식의 은행산업에 대한 간섭은 과거부터 많이 보아왔던 수법이아니었던가. 개혁을 통해 새로운 금융환경을 조성하고 그 안에서 자율적인 경영을 보장해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당초의 공언은 이미 잊혀진 것 같다. 정부가 대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다시 은행경영에 대한 간섭을 정당화하려고 한다면 이는 금융개혁의 기본에 역행하는 발상이다. 중요한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 그 일의 목표를 신속히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일을 추진하는 과정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과정을 무시한 목표 지향적인 편의주의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역사가 긴 두 은행이 합병을 통해 한 은행이 되고 서로의 장점을 발휘해 과거에 가졌던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고, 유기적인 조직으로서 제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합병은행이 참신한 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정한 절차에 따른 일처리가 중요하다. 두 은행과 관련된 당사자들이 모두 합병을 통해 혹시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것이나 아닌지에 관심이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은행산업을 포함한 금융산업의 문제가 어디에서 연유했는가를 다시 한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의 정확한 진단없이 해결 방안에 대한 방향을 논하면 일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금융산업 종사자들의 자질및 창의력 부족과 무사안일한 자세에서연유했다고 결론짓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러나 금융산업이 경제발전이나 금융질서의 유지에 중요하기 때문에 금융산업을 잘 규제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명분하에 금융기관의 자율적인 마인드를송두리째 앗아간 당국의 책임이 더욱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국은 "도덕적 해이"라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해 금융기관 종사자들을 매도해 왔지만, 도덕적 해이는 규제당국과 같이 권한은 있고 책임은 지지않을 경우에 그 폐해가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금융산업의 효과적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개혁이전에 금융환경조성을 책임져 온 규제당국의 개혁을 선행해야 한다. 금융기관의 구조조정만으로는 금융기관의 국제경쟁력을 제고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고 금융산업의 내일을 위해 용퇴한 금융기관 종사자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동안 관치금융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여러 관행들을 주도하고 시장원리에 반하는 금융환경을 조성해 우리 금융산업의 발전을 방해한 규제당국은과연 어느정도의 책임을 느끼고 있는지 묻고 싶다. 특히 과거 관치금융시절에 하던 금융관행을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다시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번 은행인사 개입은 우리 금융산업의 미래를 위협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큰 뜻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는 각오로 평생 직장을 던져버린 금융인들의 충정을 생각해서라도, 또 금융산업 발전을 통해 경제회복을 고대하고 있는 많은 국민들의 기대를 생각해서라도 앞으로의 금융구조조정은 참신하고 투명한 방법으로 추진돼야만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