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병실밖의 환자 .. 이한우 <방송인>

이한우 우리 집 근처엔 큰 종합병원이 있다. 주민으로선 골목길마다 병원에 오는 사람들이 주차를 해대 다소 불편하지만 명망이 높은 의료시설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은 편리한 일이기도 하다. 매일 그 병원 앞을 지나가면서 재미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환자복 차림으로 병원 밖으로 나와 주변에 있는 가게나 식당, 다방에 다니는환자들도 많다. 가끔은 휠체어를 타고 링게르 주사 병을 들고 골목길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볼 수 있다. 독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환자들이 퇴원하기 전에 병원 밖으로 나가는 것이 절대로 금지 돼있기 때문이다. 이런 규칙을 어긴다면 환자가 모든 의료보험의 혜택을 상실하게 된다. 또 환자복은 일종의 잠옷인데 부끄러워서라도 이런 "파자마" 차림으로 병원밖을 나간다는 것은 생각도 안한다. 우리 나라 환자들의 이런 자유로운 모습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해본다. "지루한 병실에서 밖으로 나와 맛있는 음식도 먹고 정상적인 환경에서 건강한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것이 병을 보다 빨리 낳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병이 낳기도 전에 너무 빨리 밖으로 나오면 질병이 악화될 수도 있고, 회복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즈음 우리 경제를 곧잘 환자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여러 행태의 구조조정들은 환자의 치료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구조조정을 마무리 짓겠다는 정부의 설명은 환자가 병을 고치기도 전에 병원 밖으로 나오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급한 치료는 재발의 가능성이 많은 터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이라는 치료는 고통스럽지만 보다 건강한 미래를 위하여 병의 뿌리를 뽑기도 전에 그 치료를 중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보다 희망적이고 적극적인 목표에 모든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러다가 퇴원하기도 전에 병원에서 나오는 환자가 아직도 환자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