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노트] (케이스 스터디) 'K마트'꺾은 '월마트'전략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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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마트는 거의 모든 중소도시에 진출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K마트의 아성인 대도시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안토니니는 이러한 월마트의 침공에 대비하여 무려 25억달러의 돈을 들여 5년에 걸쳐 K마트의 점포를 대대적으로 쇄신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하지만 판매현장에서는 점포의 화려한 겉모습보다는 눈에 잘 안띄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해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월마트의 아주 정교한 유통.재고.스케너 시스템 덕분에 손님들은사고 싶은 물건을 늘 가게에서 찾을 수 있었으며, 점원이 물건값을 알아보느라고 시간을 끄는 적도 없었다. 반면에 K마트의 금전등록기는 틀린 가격을 찍기 십상이었으며, 종업원은 훈련부족으로 말미암아 재고를 잘 관리하지 못했다. 92년 월튼이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데이비스 글라스(David Glass)가그의 뒤를 잇는다. 글라스는 모든 부문에서의 철저한 원가절감이라는 월튼의 경영방침을 그대로 계승하였는데, 그 결과 월마트는 대도시에서 K마트보다 더 싸게 팔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다각화전략에서도 월마트는 더 성공적이었다. 즉 K마트를 할인점과 전문점의 제국으로 만들려던 안토니니의 계획은 93년말부터 실패였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힘이 분산된 K마트는 할인점 분야에서 급속도로 월마트에 시장을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전문점의 수익성도 기대에 크게 못미쳤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일반상품과 식료품을 같은 가게에서 싸게 판다는 개념의 월마트 슈퍼센터는 전국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리하여 K마트도 그것을 흉내낸 슈퍼 K마트(Super Kmart)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슈퍼 K마트에 돈을 투입하는 바람에 안토니니의 야심적인 점포쇄신계획은 타격을 받게 된다. 즉 상당수의 점포에 대한 공사를 예정대로 추진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어차피 공사가 끝난 점포도 기대했던 만큼 매출이 늘어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87년에 안토니니가 K마트의 회장이 될때 34.5%였던 할인점분야에서의 K마트의 시장점유율은 그가떠날 때쯤 22.7%로 떨어졌으며 같은 기간 동안에 월마트는 점유율을 20.1%에서 41.6%로 올렸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전략 못지않게 최고경영자의 태도도 두 회사의성패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월마트의 월튼과 글라스는 부하들에게 문제점을 지적해 달라고 당부했으며 그들이 좋지 않은 소식을 숨기거나 제때 알려주지 않으면 크게 야단쳤다. 간부들은 판매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며 그들 역시 부하들로하여금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게 한다. 반면 안토니니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으며 특히 비판과변화를 싫어했다. 그는 또한 그에게 도전할 만한 사람은 바깥에서 데려오지 않았으며 외부 컨설턴트도 마음에 들지않는 얘기를 하면 가차없이 꾸짖었다고 한다. 유필화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