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에인절 트리

영국과 캐나다엔 복싱데이(boxing day)라는 게 있다. 보통은 성탄절 이튿날이지만 토.일요일과 겹치면 월요일이 된다. 크리스마스에 받은 선물상자를 풀어 가난한 이웃과 나눈 데서 비롯됐지만 지금은 정성껏 마련한 선물을 들고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보는 날의 의미가 강하다. 미국에선 올해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이 어느 해보다 많이 공연된다고 전해진다. 구두쇠 스크루지 이야기로 유명한 이 작품이 새삼 주목받는 것은 세기말을 맞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사랑을 베푸는 일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선 IMF체제가 시작된 뒤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큰 지원은 줄었지만 대신 작은 사랑의 손길이 늘어난다고 한다.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면 누군가 채워놓는 사랑의 김치독과 쌀통이 많아지고 구세군이 자선냄비와 함께 마련한 엔젤트리 행사(딱한 사연을 적은 카드를 나무에 걸어두면 카드내용을 읽은 사람이 선물을 준비해 자원봉사자를 통해전달되도록 한다)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있다는 얘기는 반갑다. 나눔이나 베품은 자기몫을 줄여야 가능하다. 아흔아홉섬 가진 사람이 한섬 채우려 한다고 하거니와 여유가 생기고 형편이 나아질 때를 기다렸다간 평생 남에게 빵한조각 주기 어렵다. 물론 주는 쪽은 아무리 작은것이라도 자기몫을 쪼갠 건데 받는 쪽에선 대수롭지 않거나 당연하게 여기는 몰염치때문에 언짢을 수 있다. 그러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육체와 영혼 모두 지친데다 지원의 부실함이나 생색내기용 자선에 상처입은 경우가 많다. 올해 성탄절은 금요일이어서 어쩌면 사흘연휴를 즐길 수 있다. 외식을 하거나 스키장에 가는 것도 괜찮겠지만 한번쯤 춥고 외로운 이들을 돌아보면 한결 뿌듯하지 않을까. 성탄절파티나 망년회를 조촐히 하면 떡과 연료를 사서 복지시설에 가볼 수 있다. 비인가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가시설의 상당수도 불기 없는 방에서 지낸다. 작은 행복에 감사하고 나누고 보탬으로써 보다 따뜻한 성탄절이 됐으면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