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식량지원 중단

1965년 "저하늘에도 슬픔이"가 상영됐을 때 전국은 눈물바다였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이윤복의 수기를 영화화한 이 작품엔 윤복이 어렵사리 얻은 간장을 엎지른 동생을 야단치다 함께 울어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간장도 귀하던 60년대 이땅의 풍경은 성석제의 장편 "궁전의 새"에 다시 그려진다. 진용이는 생일덕에 난생 처음 도시락을 싸오지만 선생님의 혼식검사에 걸려 빼앗긴다. 겨우 돌려받는 순간 도시락이 바닥에 떨어지며 그만 엎어진다. 그때 아이들은 본다. 위만 흰쌀밥이고 뒤집힌 아래쪽은 전부 시커먼 보리밥인 것을. 많은 중장년층에게 진용이는 남이 아니다. 지겹도록 먹은 밀가루음식에 물려 아예 수제비나 국수를 안먹는 사람도 있다. "잘살아보세"와 "중단없는 전진"이 절대적인 호응을 받은 것은 무엇보다 배고픔을 면하려는 사람들의 무서운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흘 굶으면 도둑질 않는 놈 없다"거나 "사흘 굶은 개는 몽둥이도 무서워 않는다"는 말이 있거니와 굶주린 사람에겐 보이는 게 없는 법이다. 북한의 식량난이 해가 거듭돼도 나아지기는 커녕 점점 심각해지는 듯해 답답하다. 흙범벅이 된 국수가락을 주워먹는 "꽃제비"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렵다. 북한주민 대부분이 점심을 굶는다는 소식이나 초점 잃고 퀭한 눈의 아이들 사진은 측은함을 넘어 두려움마저 느끼게 한다. 이 마당에 국제적십자사가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을 중단하고 의료품만 보내기로 했다는 보도는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더욱이 이번 조치가 북한이 그동안 받은 먹거리를 주민들에게 주지 않고 군량비로 비축한다는 의혹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에는 할 말이 없다. 다만 그나마 중단되면 일반의 식량사정은 더욱 엉망이 될 것같아 안타깝고 갑갑하다. 국제적십자사의 정신은 적군까지 치료하는 인도주의다. 그런 적십자사가 아사자가 나오는 형편을 알면서도 먹거리를 안주기로 한 것은 북한측의 처사가 워낙 어이없고 비인도적이기 때문이라 한다. 모쪼록 북한측의 태도 변화가 이뤄져 국제적십자사의 마음을 돌릴수 있게되기를 기원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