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을 일구는 사람들] 8년만에 새 시집 낸 '황지우씨'

"긴 외다리로 서있는 물새가 졸리운 옆눈으로/맹하게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를"(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8년만에 새 시집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지성사)를 낸 시인 황지우(47)씨. 그는 저무는 20세기의 "졸리운 옆눈"을 통해 어두워질수록 더 빛나는 바다의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모두들 앞만 보고 내달리는 세상. 새 세기의 문턱을 넘기 전에 지난 시대를 올곳이 비춰보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황씨는 어려운 시대를 온 몸으로 관통해 온 "뜨거운 시인". 그러나 이번 시집에서는 정념의 풀무질을 잠시 멈추고 그 속에서 피어난 "화엄의 꽃"으로 지난 시절을 되비춘다. 이는 들떠있는 사람들을 차분하게 갈아앉혀주는 반사경이기도 하다. 그에게도 지나온 날은 우울한 기억들로 가득하다. 그 속에는 "소비에트가 무너지던 날"과 "삶이 이토록 쓰구나. 너무 일찍 알게한 1950년대", "망막을 속이는 빛이 있음을 모르고/흰 빛 따라가다/철퍼덕 나가 떨어진 궁창;진흙-거울"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보따리 장사 시절, 강사 휴게실도 없는 학교의/벤치에 누워/한 점/콤플렉스 없는/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곤궁하게 견뎌온 날들도 있었다. 어려운 날들이 그 뿐이겠는가. 그의 시에는 "안과 밖"의 이중 이미지가 여러 겹으로 겹쳐져 있다. 직전 시집 "게 눈 속의 연꽃"에서 그는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일에 몰두했지만 이번에는 안에서 바깥으로 자주 향한다. "어찌하겠는가, 깨달았을 때는/모든 것이 이미 늦었을 때/알지만 나갈 수 없는, 무궁의 바깥;저무는 하루, 문 안에서 검은 소가 운다"(바깥에 대한 반가사유), "바깥을 보니, 여기가 너무 비좁다"(등우량선1) 글을 쓰려고 하면 숨이 턱 막히는 이상한 병 때문에 편지 한 장 쓸 수 없었던 세월. 위태로운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은 일쑤 낭떠러지였다. "아침마다 머리맡에는 15층이 있다/(...)/내 생이 담겨서 들려 간다는 걸/느끼고 있었던 거다"(비닐 봉지 속의 금붕어), "이 삶이 담긴 연약한 막을 또 느꼈다/2미터만 걸어가면 가스 밸브가 있고/3미터만 걸어가도 15층 베란다가 있다"(거울에 비친 괘종시계) 때때로 이 바깥은 단순한 외부가 아니라 상승적 수직 이미지로 확산된다. "초월을 기쁨으로 이끄는 계단 올라가면/영원한 바깥을 열어주는 문"(노스탤지어)이다. 그러고 보면 그가 "거대한 거울"속에서 긁어낸 것은 막막한 어둠만이 아니다. 연극으로도 만들어진 시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에서 그는 "나이 사십 넘어서 "내가 헛, 살았다"는 깨달음이/아무리 비참하고 수치스럽다 할지라도,격조있게,/이 삶을 되물릴 길은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것 인정하기 조금은 힘들지만"이라고 능청을 떨다가 "밤에는 강이 긴 비닐띠처럼 스스로 광채를 낸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라고 한 소식을 전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텅 빈 미래"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는다.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이창동씨가 이번 시집에서 가장 강렬하게 받아들였다는 "두개골을 들고 있는 자"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지난 시대 "정신의 공황"과 앞으로의 "불확실성"을 한꺼번에 암시하는 대목이다. 황씨는 "21세기를 흔히 문화의 세기라고 하는데 이것이 머리 속에 든 것을 모두 내다 파는 세기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문화자본이니 인식자본이니 해서 정신영역의 콘텐츠를 무조건 상품화하는 시장판에서 과연 어떤 나무가 아름답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 해남태생으로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그는 한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거쳐 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로 있다. 시집으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나는 너다" "게눈 속의 연꽃" 등이 있으며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