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새해를 열며...도약은 시련뒤에 온다 .. 천양희

천양희 새해가 되니 새로운 해가 떠오르는 것만 같아 마음이 다 환해진다. 다시 무슨 일에든 도전하고 싶고 도전하는 것만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이제는 때를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해본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낮잠을 자다 때를 놓친 토끼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토끼해에 토끼를 비판해 보는 것 또한 필요한 것 같다. 아무리 잘 뛰는 토끼라도 "뛰지 않으면 진다"는 너무나 평범한 사실을 절실히 생각해야할 때가 지금인것 같다. "별주부전"의 토끼같은 지혜로 다시 토끼처럼 뛴다면 IMF쯤이야 무슨 문제이랴 싶다. 시작하기 늦은 건 아무것도 없고 내일에는 내일의 해가 뜰 것이며 폭풍이 지난 들에도 꽃은 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열정을 가지고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한다면 누가 나에게 진흙을 주더라도 그것으로 황금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한다는 것은 청년정신이며 청년의 힘이다. 청년정신으로 변질된 세상을 변화시킨다면, 청년의 힘으로 시련을 도약으로 바꾼다면 사막에서도 오아시스를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자면 우리 모두, 하나의 화두라도 "마음이 먹는 밥"으로 삼아야 한다. 그 밥으로 나를 키운다면 그것이 내가 나를 찾는 가장 좋은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이 요즈음은 너무 구불텅한 것같다. 동시에 삶도 너무 어려운 시험문제인 것같아 도무지 답을 잘 쓸 수가 없을 지경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세상일들은 아직도 성적순이 아니면 소유순으로 사람을 채점하려든다. 이럴땐 무시험의 삶이 하나쯤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격변시대에 필요한건 안일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이다. 도전을 하려면 어떤 일에든 굳세어야 한다. 6.25때의 "굳세어라 금순아"처럼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세어야 한다. 백조의 우아한 겉모습 뒤에는 수면아래에서 힘겹게 움직이는 발이 있듯이 도전뒤에는 무수한 고난이 있다. 계수나무 아래에서 옥토끼가 방아 찧는다던 달나라도 인간이 정복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 시대는 진정한 리더가 더욱 필요하다. 보스보다 리더가 필요한 것이다. 리더는 선의에 의존하지만 보스는 권력에 의존한다. 리더는 사람을 이끌어 가지만 보스는 그들을 몰고간다. 리더는 희망을 주지만 보스는 겁을 준다. 리더는 존경을 모으지만 보스는 복종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리더는 백사람의 보스보다 낫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올해는 동정보다는 존중받는 사람이,남용보다는 포용하는 사람이, 대답보다는 질문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겸손하고 예의바른 교양있는 세계인이 되기 위해 글로벌 에티켓을 지키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올해는 예의 바르게 처신하도록 해보면 어떨까. 가족이기주의, 패거리모임에서 벗어나보면 어떨까. 나누어 가지면서 함께 살아보면 어떨까. 고통받는 사람들과 연대감을 가져보면 어떨까. 쉽고도 어려운 일이 때로는 어렵지만 쉽게 해결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토끼해에 토끼처럼 민첩하고 슬기롭고 부지런하게 살면서 새 천년을 향해 힘찬 도약을 하도록 하자.도약은 언제나 시련뒤에 온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6년이나 걸려 썼고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즈"를 8년이나 걸려 썼다.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있거라" 마지막 부분을 33번이나 고쳐썼고 리처드 버크의 "갈매기 꿈"은 12번이나 출판을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런 어려운 시련이 명작들을 남기게 했다. 세상이 어찌되든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하고 누가 뭐라든 나는 나의 길을 가야 한다. 역사와 문명엔 만약이란 없으므로.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