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좀 생각하고 삽시다] (8) '단란주점 살풍경'

부산 중구 부산호텔 앞의 한 가라오케. 룸이 없이 중앙무대를 함께 이용하도록 되어 있어 이따금 손님들간 마이크 쟁탈전이 벌어지곤 한다. 지난 11일 오후 9시께. 직장동료로 보이는 취객 5명이 들어오더니 자리를 잡는둥마는둥 무대부터 오른다. 한곡씩 다 돌아갔나 싶은데 갑자기 "앵콜, 앵콜" "잘할 때까지 앵콜" 등을 외치기 시작했다. 계속 부를 태세다. 30여분간 기다렸던 다른 손님들이 재차 노래를 신청했으나 "5인조"는 양보할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종업원의 제지에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다른 손님이 "그만 좀 합시다"라고 항의를 하고 "5인조"가 "왜 노래를 못하게 하느냐"며 적반하장식으로 맞서면서 막판 볼성사나운 광경이 연출되고말았다. 한국 바이어와 함께 이곳을 찾은 일본 조선기자재업체 이마무라씨는 "기분좋게 술 먹으러 와서 순서대로 노래를 부르면 될텐데 왜 저렇게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어느 한 일행이 마이크를 독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의 기분은 생각하지도 않고 무조건 노래를 강요하는 분위기도 문제다. 부경무역의 최석철 사장(44)은 최근 일본 바이어와 함께 가라오케에 갔다가 크게 당황한 적이 있다. 갑자기 옆자리 손님이 바이어에게 노래를 신청했기 때문이었다. 바이어는 썩 내키진 않았으나 분위기를 고려해선지 한곡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이번에는 "앵콜"이 들어왔다. 바이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극구 사양한 뒤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 노래를 강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다시는 이곳에 오지말자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최사장은 "한국인은 어울려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 그렇게 된 것"이라며 "앵콜은 예의로 한 것이니 양해해달라"고 진땀을 흘렸다. 그러나 바이어의 마음을 달래 수출상담을 성사시키기까지는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부산에 있는 대기업의 한 일본인 간부는 "한국의 단란주점에서는 남을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원하는 사람만 순서대로 돌아가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휴식공간이 되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