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때아닌 '힘겨루기'

전철환 한은총재는 지난 14일 한국은행의 외환은행 직접 출자에 대해 "정치권에서 법을 고쳐 길을 터줘야 가능하다"고 밝혔다. 현행 법 아래선 외환은행에 출자를 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제 공은 정치권으로 넘어가게 됐다. 해결의 실마리는 더욱 꼬일수도 있다. 국회에서의 법개정이라는 게 시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재경부 관계자는 "참 답답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은 총재가 간단한 일을 왜 그렇게 어렵게 만드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작년 8월부터 5개월여간 질질 끌어온 한은의 외환은행 출자에 대한 재경부와한은간 논쟁은 외형상 단순하다. 법률 해석상의 문제다. "한은법(1백3조)은 한은이 영리법인에 출자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 외환은행 출자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예금보험공사 등을 통한 우회출자나 할수 있다"는게 한은측 논리다. 이에 대한 재경부의 반론은 이렇다. "한은법상 영리법인에 출자할 수 없도록 돼 있긴 하지만 "외환은행 폐지법"에선 한은의 주식소유 제한에 대한 특례를 인정하고 있어 이 조항을 원용하면한은 출자는 가능하다" 이미 이규성 재경부장관은 그런 유권해석에 대해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겠다"는 의사까지 표명했다. 그럼에도 한은은 "한은이 재경부의 유권해석을 적용받는 산하기관이 아니다"며 "재경부 장관의 유권해석은 구속력이 없는 참고사항일뿐"이라고 버티고 있다. 이같은 평행선엔 지금까지 한치의 변화도 없다. 한때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까지 중재에 나섰지만 결국 두손을 들었다. 중앙은행인 한은과 금융정책 당국인 재경부 사이엔 견해 차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또 중앙은행과 정부간 토론은 어떤 의미에서 바람직하다. 최근 불거졌던 "경기진단과 금리인하 속도"를 둘러싼 논쟁도 그렇다. 문제는 지금 외환은행 출자건의 경우 재경부와 한은간의 "힘 겨루기"로 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재경부의 한은 예산삭감 등과 뒤엉켜 감정대립으로 해석되고 있기도 하다. 일부에선 한은의 또다른 "독립투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재경부와 한은이 서로에 대해 "몽니"를 부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재작년 외환위기 직전에 재경부와 한은은 중앙은행의 독립문제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 서로 싸우는 바람에 외환위기가 오는 줄도 몰랐던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지금도 남미의 브라질과 러시아에선 금융위기의 바람이 일고 있다. 재경부와 한은이 2년전의 일을 되풀이하지 말기를 바랄뿐이다. 차병석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