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일본 자본의 몰락

"닛산을 잡아라" 세계자동차업체들이 닛산자동차와의 제휴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프랑스의 르노, 독일의 다임러 크라이슬러, 미국의 포드... 내로라하는 자동차사들은 모두 이름을 걸치고 있다. 메가머저붐이 마침내 일본으로 튄 것이다. 닛산제휴에 선수를 치고 나선 곳은 세계5위 다임러크라이슬러. 슈렘프 회장은 오는22일 일본을 방문해 제휴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다임러크라이슬러의 탄생으로 어려움을 겪고있는 프랑스 르노가 이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음은 물론이다. 르노는 18일 "아시아전략의 일환으로 닛산과 교섭을 벌이고 있다"며 "출자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쪽에서도 뛰기 시작했다. 이미 닛산과 일부 차종을 공동생산중인 포드가 협상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경영위기를 맞고있는 닛산을 싼값에 차지해 숙원인 아시아시장 공략을 위한 전진기지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닛산은 지난 33년 설립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있다. 지난해 5월 대대적인 구조개혁을 선언한 이래 계열사인 닛산리스는 물론 닛산자동차의 본사사옥 신관까지 팔아 치웠다. 2003년까지는 연산능력을 15%이상 삭감한다는 감량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올 3월결산에는 3백억엔 상당의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닛산의 운명을 지켜보고 있는 일본인들의 마음은 한마디로 착잡하다. 특히 일본 자동차업계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르노와 닛산이 합치면 연산 4백만대 규모의 세계 3위사로 껑충 뛰어오르게 된다. 다임러와 손잡을 경우에는 6백50만대로 2위인 포드와 맞먹게 된다. 세계시장 판도에 지각변동을 몰고 올 것이 뻔하다는 얘기다. 그것도 해외에서가 아니라 일본시장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완성차 몇대를 수입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국 자동차회사를 통째로 내줘야 하는데서 오는 절박감도 묻어난다. 한때 일본자동차는 무너져 내리는 미국경제를 공략하는 일본자본의 상징이고첨병이었다. 미국의원들은 의사당 마당에서 일본자동차를 때려부수는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그 풍경화가 이제 역전되고 있는 셈이다. 한 일본 기자는 지금 세계의 자동차사들이 잘드는 회칼을 들고 "일본자동차"라는 생선을 썰고 있다고 비유했다. 한때 "미국을 사들인다"는 질시를 받았던 일본 자본의 조락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