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간판 색깔

고대 로마시대에는 선술집 문간위에 잎이 달린 나뭇가지를 내걸었다고 한다. 그것이 선술집 간판이었던 셈이다. 이런 풍습은 포도주를 파는 선술집에 상록수화환을 내거는 오스트리아 빈의 풍습에 남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운치있는 간판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요즘은 어떻게든 자신의 가게를 고객들이 기억하기 쉽게 만들고 경쟁자의 것들보다 호소력 있게 하기위해 멋드러진 상호와 화려한 문구가 곁들여진 형형색색의 간판을 내거는 것이 상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고려시대에도 있었던 우리나라의 간판은 60년대에 네온사인이 나타나고 70년대 후반부터는 전력문제로 규제되다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규제가 일부 완화돼 다시 활기를 띠게 됐다. 지금 서울을 비롯한 상가건물 전면은 온통 간판으로 뒤덮여 있다. 91년 1층에만 허용되던 가로간판을 3층까지 달수 있도록 했고 이.미용원,약국의 표지설치를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꾼 탓이다. 국제도시 서울의 간판문화는 "무질서"그 대표라는 비판을 받은지도 오래다. 특히 IMF한파이후 "빨간바탕" 간판이 급속도로 늘어나 도시미관을 해치고 있다. 서울 서초구의 경우 지난해 허가. 신고된 2천1백여개의 간판중 70%가 빨간색이어서 빨간색을 규제하는 조례제청을 서두를 정도다. 유흥가 밀집지역은 낮에도 그렇지만 밤에는 온통 빨간색 일색이다. 서울교외의 경우도 화원 학원 소주방까지 빨간간판이 내걸려 있다. 간판은 도시의 표정과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국제도시인 서울이 제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환경과 어울리는 간판색상의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한국건축의 단청은 획일화가 아닌 진채의 조화로 꿈같이 아름다운 색채를 연출하고 있지 않은가. 불경기 속에서 튀는 색상으로라도 고객의 눈길을 끌려는 상인들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간판색깔 획일화는 결국 광고효과도 사라지게 한다. 규제보다는 상인들의 자발적 이해와 협조가 아쉬운 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