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문회] "잘 모르겠다" 구체적 답변 회피 ..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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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를 초래한 경제정책"규명을 위해 이경식 전한은총재, 홍재형전부총리 등 4명을 상대로 25일 오전 시작된 국회 경제청문회 증인신문은 사안의 중대성 때문인지 긴장된 분위기속에 진행됐다. 특히 개의직후 장재식 위원장이 증인들에게 "얄팍한 경제지식이나 변명으로 진실을 호도하면 또 한번의 죄를 지는 것"이라고 강조하자 증인들의 표정이 굳어지기도 했다. 특위위원들은 신문이 시작되자마자 지난 97년 환란 발생 전후상황을 꼬치꼬치 캐물었으나 "잘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하는 경우가 많아 증인들과 지리한 입씨름을 계속하기도. 이 전총재는 "경제사령탑"을 지낸 전력이 보여주듯 경제논리를 펴거나 당시상황을 설명, 특위위원들의 질문이 막히게 만들었다. 특히 이 전총재는 대통령에게 외환위기를 왜 직보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보좌를 잘못한 것은 할 말이 없지만 한은에서 보고했어야 한다는 데는 할 말이 있다"며 당시 경제정책 결정메커니즘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이 전총재와 홍 전부총리 등 4명의 증인은 이날 오전 청문회가 열리기 20분전 청문회장에 들어와 증인선서문에 서명하는 등 증언준비를 마쳤다. 이 전총재는 "청문회 준비를 많이 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준비는 무슨준비냐"며 "어제 미국에서 귀국해 청문회 중계방송도 한 번 못봤다"고 답변했다. 신문에 앞서 이 전총재 등 증인 4명은 오른손을 들고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없이 증언할 것"을 선서한 후 증인선서문을 장 위원장에게 제출했다. 이날 증인신문은 예정 시간표가 미리 배포되기도 했으나 지난주 기관보고와 마찬가지로 예정시간을 훨씬 넘겨 진행돼 심야까지 계속됐다. 한편 국민회의는 이날 이윤수 의원을 잠시 빼고 지난 97년 한보청문회에서 맹활약했던 김민석 의원을 교체 투입했다. .이 전총재는 이날 답변에 대비해 관련서류를 담은 검은색 007서류가방을들고 나왔으며 홍 전부총리는 자주색 손가방만을 소지했다. 이 전총재는 신문에서 "기관보고때 전철환 한은총재가 답변한 내용에 대해동의하느냐"는 질문에 "24일 귀국해서 청문회를 전혀 못봤기 때문에 뭐라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이 전총재는 이날 특위위원들이 "김영삼 전대통령이 전화로 증시상황등에대해 물어본 시점이 11월12일 아니냐"고 묻자 "내 기억엔 11월10일 밤 9시30분께"라고 답변했다. 이어 "특위위원들도 자꾸 11월12일 이라고 하고 감사원 감사에서도 그렇게결과가 나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11월10일이었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한 임창렬 전부총리는 이날 자민련측 특위위원들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임 전부총리의 증인 채택여부를 놓고 국민회의측과 갈등을 빚은 바 있는 자민련측 위원들은 작심한 듯, 임 전부총리가 "IMF 행을 고의로 늦춘 것 아니냐"고 따졌다. 그로인해 외환위기를 증폭시켰다고 우회적으로 공격했다. 어준선 의원은 "참고인은 IMF 자금지원 협상이 끝난 뒤 열린 제1차 경제대책회의에서 "IMF가 한국에 지원하는 자금은 통상적인 것을 벗어나는 대규모로, 최단시일 협상타결의 기록을 세웠다"고 자화자찬한 적이 있지 않느냐"며 임 전부총리를 몰아세웠다. 그는 이어 "웃는 얼굴의 거친 실용주의자", "미국정부가 관주도주의자로 기피했던 인물을 경제담당 중책에 기용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등 당시 외신 보도내용을 인용하기도 했다. 또 IMF측과 최종 합의를 확인하지 않은 채 IMF 차관 양해각서 의결을 위한 국무회의를 개최하려 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이는 참고인의 오만한 성격에서 비롯된 일로, 국가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임 전부총리는 이에 대해 "강 전부총리로부터 IMF 자금지원 신청방침과 발표시기에 대해 문서 또는 구두로 전달받은 바 없다"면서 "이는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통해 이미 밝혀진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