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출판가] 서상록씨 자전에세이 '내 인생...' 출간

"아무 대책없이 사표를 냈다. 97년 12월, 무직자가 됐다. 며칠 쉬고 나자 솔솔 새로운 용기가 생겼다. 고민끝에 지금 새 인생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실패한 경영인이 다시 경영을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래 백지상태에서 재출발하자" 삼미그룹 부회장에서 호텔롯데 견습 웨이터로 변신한 서상록(63)씨. 그의 자전에세이 "내 인생 내가 살지"(한국경제신문사)에는 따뜻한 감동과 삶의 교훈이 배어 있다. 지난해 봄 굴지의 대기업 경영자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장관 자리와도 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만족한다"며 "국내에서 최고 가는 웨이터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직업이나 직책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느냐가 성공의 기준라는 게 그의 철학이다. 그래서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프로의식을 체질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 책에서 굴곡진 삶의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자신을 희망의 편에 서게 해준 사람들의 얘기도 들려준다. "경쟁상대는 메이드 인 월드" "50년을 위해 5년을 투자하라" "상식 밖에 존재하는 진리는 없다" 등 변화와 개혁을 촉구하는 "쓴소리"까지 담았다. 지나온 길이 아무리 어렵고 험난하더라도 희망을 갖고 앞길을 개척하면 운명은 자기 편이라는 믿음. 이것이 그를 절망을 딛고 일어서게 만든 힘이었다고 고백한다. "내 얘기가 추운 거리를 떠돌며 막막해 하는 실직자들에게 힘이 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 된다면 더 이상의 보람이 없겠습니다" 그는 실업의 고통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눈높이를 낮추고 어떤 분야에서든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 바로 거기에 길이 있다"고 조언한다. 그가 파출부 아줌마를 사장으로 변신하게 만든 일화도 소개돼 있다. "아주머니, 같은 일을 하더라도 성의있게 하면 좋잖아요. 욕실에 꽃 한 송이꽂아두고 필요한 게 없는지 전화번호 적어서 메모도 남겨두고.. 신뢰감이 생기면 고객이 더 늘게 돼 있거든요" 그로부터 1년 뒤 그는 그 파출부로부터 초콜릿 한 상자를 선물로 받았다. 그의 말대로 실천했더니 부르는 데가 너무 많아 일손을 대지 못할 지경이 됐고 급기야 파출부 12명을 거느린 경영자로 우뚝 섰다는 사연이었다. 이제는 그가 다시 보여줄 때다. 견습 웨이터 생활 10개월. 그는 서울 소공동 호텔롯데 35층의 프랑스식당 쉔브룬에서 하루 5~6시간씩 일한다. 근무시간은 오후 5시에서 10시까지지만 아직 "햇병아리"이기 때문에 남보다 좀더 일찍 나오고 뒷정리까지 하다보면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웨이터 직급도 층층시하. 직접 손님의 주문을 받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짠밥"이다. 그가 맡은 일은 식당입구에서 손님을 맞거나 잔심부름 정도. 선후배 관계도 엄격해 나이 어린 웨이터들에게 꼬박꼬박 "선배님" 호칭을 붙이고 그들의 담배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대학이나 기업체, 각종 사회단체에서 강의하는 일로 더 바쁘다. 수입으로 치면 월급보다 강연료가 훨씬 많다. 그래도 그가 가장 정성들이는 곳은 "평생직장"인 식당이다. 아내와 아이들도 흔쾌히 이해해줘서 편안하다. 오로지 손님들을 줄겁게 해주기 위해 "겁도 없이" 바이올린을 익히느라 비지땀을 흘리는 그. 우리 시대 진정한 "프로"의 면모가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게 하는 모습이다. ----------------------------------------------------------------------- 서상록씨의 인생 역정 =36년 경북 경산의 가난한 농가에서 출생. 형편이 어려워 정규 중고교과정을 밟지 못했으나 독학으로 고려대 정외과에 합격. 졸업후 직접 경영하던 회사가 어려워지자 부채를 청산하고 단신 도미. 미국 벼룩시장에서 각설이타령으로 돈을 벌어 부동산회사 설립. 하원의원에 도전, 세번의 고배를 마셨지만 한국인의 미의회 진출 계기를 마련. 92년 삼미그룹 부회장으로 발탁돼 귀국. 97년 삼미 부도후 사표를 내고 눈높이를 낮춰 웨이터로 제2의 인생 개척.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