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이중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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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중섭(1916~1956)의 일생은 한국현대사가 만들어낸 한편의 슬픈 드라마다. 그는 평남 송천리 부농집안에서 태어나 일찌기 일본유학까지 마쳤다. 그러나 6.25때 월남한 뒤 생활고때문에 가족과 헤어지고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다 홀로 숨을 거뒀다. 소그림과 함께 유명한 그의 은박지그림은 현재 미국 뉴욕모던아트뮤지엄에사 소장할 만큼 개성과 세계성을 인정받지만 55년 서울개인전 당시 춘화라고 해서 몽땅 철거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이 사건은 가뜩이나 지쳐 있던 이중섭을 자학과 술에 빠지게 해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모든 위대한 예술가가 그렇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사람들의사랑을 받고 있다. 72년 유작전과 86년 30주기회고전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그는 대표작 "흰소"가 "21세기에 남을 고전" 회화부문 최고작으로 꼽힐 만큼 예술적 대중적 인기를 확보했다. 실제로 그의 그림들은 한결같이 시대와 국가를 초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근대화가로는 처음 올 1월 이달의 문화인물이 된 것도 이같은 사실에 기인한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이중섭특별전"은 이런 그의 작품세계를 실물을 통해 살펴볼수 있는 좋은 기회다. "흰소"와 "황소" "풍경" "게와 소년" "길떠나는 가족" 등 전시작 50점은 대부분 개인소장품으로 좀처럼 공개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림들은 하나같이 시대와 국가를 초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사정이 이런 만큼 개막 이후 주부 직장인, 손을 맞잡은 노부부 등 관람객들이 줄지어 찾고 있지만 전시장이 좁아 형편이 여의치 않다. 결국 화랑에선 방학중 관람못한 학생들이 볼수 있도록 이달 21일까지던 일정을 늘려 3월8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아울러 국내외에 이중섭을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판화와 포스터 등 문화상품을 제작했다. 90년대중반 커피전문점이 늘어나면서 해외 아트포스터 수입상만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국수주의는 경계해야 하지만 우수한 우리것 놔두고 외국것만 찾는 풍토는곤란하다. 이번 특별전이 이중섭은 물론 우리 현대미술 전반을 가까이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