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분석 '아시아 금융위기'] (중) 클린턴, 한국위기 몰라

뉴욕타임스(NYT)는 아시아 금융위기와 관련, 지난 15일부터 4회에 걸쳐 게재하고 있는 "글로벌 전염" 시리즈 17일자 기사에서 "미국이 일본의 아시아 인근국 지원을 봉쇄하는 등 아시아 외환위기를 오히려 악화시킨 책임도 있다"고 폭로했다. 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국무부와 중앙정보국(CIA) 등으로부터 한국에관해 정확한 보고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상황이 돌이키기 어려워진 97년11월말에 가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브라질을 거쳐 중남미 전역을 강타하고 있는 아시아발 금융위기는초동 단계에서의 오진에 의해 그 파장이 더욱 증폭됐다. 미국 행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은 97년 7월 태국에서 발생한 통화 위기를그 두해 전에 멕시코에서 일어났던 것의 재판으로 간주했다. 그리고는 재정긴축과 금리인상 등 판에 박힌 처방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금리의 대폭 인상은 멀쩡한 기업들까지 무더기로 도산시키는 결과를초래했다. 미국 행정부는 이처럼 아시아 국가들에 잘못된 처방을 강요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위기 초기 단계에서 필요했던 다른 나라의 자금 수혈마저 방해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97년 여름 태국 정부로부터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받은 일본은 대규모 구제금융을 검토했으나 이내 포기해야 했다. 워싱턴이 "모든 지원은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야 하며 엄격한 긴축을 조건부로 이뤄져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의 위기상황이 점점 심각해지면서 일본은 또 한차례 지원 프로그램을 구상하게 된다. 97년9월 1천억달러의 기금으로 발족시킬 것을 주창한 아시아통화기금(AMF) 플랜이 그것이다. 일본은 기금의 절반은 자국이 출연하고 나머지는 아시아 각국이 분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은 단 돈 1센트도 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 플랜을 들은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은 몹시 진노했다. 그 이유의 하나는 일본이 자신과 이 문제를 상의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루빈은 홍콩에서 열린 세계은행-IMF 연차총회에 참석키 위해 대기중이던 특별기로 향하는 동안 분노를 삭이지 못해 연신 씩씩거렸다. 루빈은 서머스 차관을 비롯한 측근들에게 "일본의 AMF 구상이 실현될 경우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이 감퇴하는 것은 물론 영향력도 줄게 될 것"이라고말했다. 루빈과 서머스는 유럽 및 중국의 힘까지 빌려 일본의 구상을 좌절시켰다. 미국 정부 일각에서는 당시 루빈 장관이 사태의 심각성을 좀 더 진지하게 인식했더라면 그때와 다른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이 AMF 카드를 꺼내든지 1년여 뒤인 작년 11월 비슷한 아시아 지원 프로그램을 내놓자 루빈 재무장관은 "건설적인(constructive) 아이디어"라고 말을 바꿨다. 미국이 이처럼 거듭된 실착을 놓는 동안 태국의 금융 위기는 악화일로를 치달았다. 이렇게 되자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한국 등도 잇달아 외환 위기의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태국 사태에 놀란 서방의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돈을 일제히 빼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일파만파로 사태가 확산됐음에도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97년 11월까지도 정확한 실상을 모르고 있었다. 한국이 위험 수위를 치닫고 있는 와중에서도 경제 흐름에 둔감한 국무부와 CIA는 클린턴에게 "이상 없음"이라는 보고만을 거듭했고 클린턴은 이런 정보 보고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다. 마침내 한국이 파국 직전의 위기에 몰렸음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추수감사절이었던 11월 27일,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핵심 참모들과 다섯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IMF 구제금융을 받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해서였다. 김 대통령은 명백한 위기 앞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상 최대 규모인 5백7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 수혜자는 한국이 아닌 서방의 채권 은행들이었다. 이들 은행은 구제금융이 결정되자 한국에 대한 대출금을 무차별 회수했다. "할 수 있을 때" 돈을 챙겨두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그 뒤 대출금의 만기를 재연장해 주는 조건으로 한국 정부의 보증을받아두는 한편 국제 기준금리보다 2-3%포인트 높은 이자를 챙기는 등 톡톡히재미를 봤다. 스탠퍼드대의 밀튼 프리드먼 교수는 "미국 등이 아시아 국가들에 지원한 구제금융 자금은 이들 국가를 거쳐 미국 은행들의 금고로 되돌아왔다"며 미국과 IMF의 역할을 비판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