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국민연금제도 재고해야 .. 복거일 <경제평론가>

복거일 "국민연금 파동"이 확산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22일 국민연금제도 확대실시에 따른 혼선과 관련해 김모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질책했고 국민회의에선 책임자문책을 거론했다. 급기야 전계휴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이 사표를 쓰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시민들이 압도적으로 반대하는데 예정대로 강행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뒤늦게 보완대책을 내놓았으나 일이 워낙 단단히 틀어져버려 깔끔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서너걸음 물러나서 이 문제를 널리,그리고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의 확대는 여러모로 불행한 조치였다. 시민들의 불만은 준비가 덜된 상태에서 관료주의적으로 확대 실시를 강행한데에 집중됐다. 실은 그것은 이번 조치가 안은 문제들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이다. 먼저 실시 시기가 기막히게도 잘못 잡혔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소비 위축이 경제 회복에 가장 큰 장애가 된 터라 정부는 시민들의 소비를 늘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정부로서는 적극적 감세 조치라도 생각해야 할 상황이다. 다행스럽게도 자동안정장치들(automatic stabilizers)이 작동해 세수는 줄어들고 실업보험과 같은 소득 이전은 늘어남으로써 소비위축이 적잖이 상쇄되고 있다. 그런데 이름만 다를뿐 실질적으로 세금인 국민연금이 느닷없이 나타나 어렵사리 되살아나는 소비를 위협하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경제운용을 맡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아주 부실하게 운용돼 지난 10년동안 무려 1조6천억원의 손해를 보았다고 한다. 연금 운용에 관한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고 확대조치를 추진한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근본적 문제점은 국민연금과 같은 강제적 노후보험이 낡은 제도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국민연금은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지만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에겐 거의 혜택을 주지 못한다. 그런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사회안전망의 주요 부분인 국민연금의 확대는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궁극적 목적을 또렷이 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목적은 나이 든 사람들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그런 사회안전망의 유일한 방식이 아니다. 실은 여러가지 유력한 대안들이 이미 나왔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불가결한 장치인 것처럼 그것에 초점을 맞추고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가장 유력한 대안은 이른바 재정화(fiscalisation)다. 재정화는 노후 연금이나 실업 보험과 같은 사회안전망의 비용을 일반 조세제도로 돌리는 것이다. 재정화는 여러가지 모습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음소득세"(Negative Income Tax)다. 음소득세 제도에선 소득이 많은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소득세를 낸다. 그러나 균형점 아래의 소득을 얻는 사람들은 음소득세를 낸다. 곧 정부로부터 현금을 교부받는다. 소득이 한푼도 없는 사람들은 최저소득을 보장받는다. 최저소득의 보장은 음소득세만이 지닌 매력적 특징이다. 본질적으로 납부액과 수령액이 연계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용가능한 재원의 크기에 따라 실수령액이 달라지는 연금은 최저소득을 보장할 수 없다. 게다가 일반조세 제도의 한 부분이므로 연금이나 보험과는 달리 음소득세는 관리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부정확하거나 시효가 지난 자료 때문에 생기는 마찰도 없다. 그리고 여러 단편적 제도들로 이루어진 사회안전망을 소득세 체계로 일원화해 합리적이고 공정한 소득 이전을 기약할 수 있다. 음소득세는 이미 여러 나라들에서 부분적으로 시행됐다. 지금 영국의 블레어 정권이 추진하는 "기본 소득"(Basic Income)제도도 음소득세의 일종이다. 우리가 이 제도를 도입하는데는 별다른 위험이나 어려움이 없다. 관료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거센 반발은 우리에게 노후연금 문제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주었다. 국민연금을 그저 보완하는 방안만을 다루고 끝내기엔 너무 아까운 기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