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윤재의 돈과 법률] (156) '내구연한 지난 TV 폭발사고'

우리 주변을 보면 사실 위험한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생각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제조물책임에 관한 법률이라고 해서 어떤 물건을 만들어서 팔게되면 그 물건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표시를 해야하고,만일 그런 표시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물건을 만들어 팔았다가 사고가 나게 되면 물건을 만든 사람은 물론 그 물건을 판매한 판매업자에게까지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도록 되어 있습니다. 특히 제조물책임에 관한 법률이 있게 되면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제품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대신 제조회사가 제품에 하자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이 피해보상을 받기가 훨씬 쉽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제조물책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어서 소비자보호원에서 법률안이 나온 적도 있고, 일부 법률가들이 나름대로의 안을 만들어서 제출, 제조물책임에 관한 법률제정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고등법원에서 이러한 제조물 책임을 인정하는 판례가 나와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사건은 TV 폭발사고로 인해서 화재를 당한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회사와 폭발한 TV 제조회사간에 벌어진 소송 사례입니다. 당초 TV를 제작한 제조회사에서는 TV의 내구연한이 5년인데, 사고 시점이 이 내구연한을 지난 후에 발생된 것이기 때문에 제조회사에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제1심 법원은 이런 제조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제조회사에는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고, 그러자 보험회사에서는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문제가 된 TV가 정상적으로 수신하는 상태에서 폭발한 이상,그 제품에 결함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고, 사고 발생 원인이 TV를 시청하던 피해자가 TV를 잘못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상, 안전성과 내구성을 갖추지 못한 결함으로 인해서 소비자에게 피해가 발생되었다면 제조회사가 소비자에게 불법행위로 인한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또 대표적인 가전제품인 TV는 제조회사가 설정한 내구연한이 다소 경과되더라도 사회 통념상 위험한 물건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니까 제조회사로서는 제조과정에서 안정성을 확보해야 할 고도의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폭발의 위험성을 경고하지 않은 이상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판결했습니다. 이번 고등법원의 판결은 그동안 입법 여부를 놓고 소비자 단체와 기업간의 심한 이견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제조물책임에 관한 법리를 법원이 먼저 인정한 것으로서 앞으로의 입법과정과 유사소송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