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뉴스의 도플러 효과 .. 김병주 <서강대 교수>
입력
수정
김병주 어린 시절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먼 기적소리에 새벽잠 설치던 날이 며칠이던가. 입속의 침을 말리고 가슴 두근거리게 만들던 방랑길에의 동경이 얼마나 간절했던가. 이제 국내에선 박물관으로 옮겨진 증기 기관차들의 기적을 다시 들을 기회가없지만 여행의 기대만은 저버릴 수 없다. 열차의 굉음은 듣는 이의 위치에 따라 달리 들린다. 열차 좌석에 앉은 승객에게 한결같이 들리는 소리가 정거장 플랫폼에 선 사람에게는 가까이 다가올 때는 주파수가 높아져 크게 들리다가 멀어지면 주파수가 낮아지고 작게 들린다. 1842년 이 현상을 설명한 오스트리아 과학자 크리스티안 도플러의 이름을 따서 도플러 효과라고 한다. 이는 소리와 빛의 파장에 공통되게 적용된다. 빛은 근접할 때 푸른 색을, 멀어질 때 붉은 색을 띤다는 원리가 천체관측자에게 요긴하게 쓰인다. 사회 현상에도 유사한 현상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대중매체 보도자세의 도플러효과가 주목된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기왕 뉴스화된 것의 후속 보도를 소홀히 다루는 것이 매스컴의 기본 생리이다. 새로운 것을 요란하게 대서특필해 독자로 하여금 기사내용의 중요성을 과장 인식하게 유도한다. 반면 낡은 것은 토막기사로 다루거나 무시한다. 여기에는 보도자의 주관적 자의성도 작용한다. 자연현상의 관찰에는 시청각 장애자가 부적합하다는 것이 자명하지만, 사회현상의 관찰에는 그것이 불분명하다. 불과 몇달전 독일 사회당과 녹색당의 연합정권 출범을 분수령으로 다수의 유럽국가들이 좌파정권으로 기울자 국내 언론은 런던대학 기든스 교수의 이른바 "제3의 길"을 새시대의 정치경제철학으로 치켜올렸다. 동구권의 소비에트 체제가 몰락하자 한때 잠잠하던 이른바 진보주의자들도다시 기동할 호기를 맞이했다. 이제 서구에서 시장경쟁의 시대는 한물 가고 사회주의적 제도를 강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물결이 높은 듯했다. "제3의 길"을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지난날 사회주의 정당의 기본노선 수정에 역점을 둔다. 즉 기간산업의 국유화, 전투적 노동조합의 요구 등 전통적 정책노선을 포기하고 대처리즘(Thacherism)을 포함한 시장경제 노선의 장점을 수용하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국내 대중매체들이 간과한 관점이다. 이것은 단순히 대중매체의 도플러 효과 때문인가, 언론계 관찰자들의 주관적 편견 때문인가. 독일 적록 연합정권은 라퐁텐 경제장관의 좌파적 돌출 언행으로 출범초기부터 불협화음이 잦았다. 라퐁텐은 출신 지역인 헤센주 선거 실패에 이어 드디어 며칠 전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슈뢰더 정권이 붉은 색을 지우고 중도 노선으로 돌아서는 대목이다. 국내 언론의 "제3의 길"의 해석은 아직도 수정되지 않고 있다. 매스컴은 뉴스 보도에 선별적일 수밖에 없다. 해외 뉴스 보도에서 국내언론의 선별 기준이 일정한 경향성을 보인다면 지나친 판단인가. 팍스 아메리카나에 식상한 나머지 유럽 것이 돋보이기도 한다. 유럽제국의 문물 중 배울 것이 많다. 동시에 다른 나라 것과 마찬가지로 배우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예컨대 북구의 과도한 사회보장제도나 독일의 일자리 나누어 갖기(job sharing)도 그중 하나다. 임금은 그대로 두고 노동시간을 줄여 실업자와 나누는 방식으로는 고용기회는 늘지만 임금부담이 늘어나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킨다. 최근 프랑스 BNP은행이 파리바은행과 SG은행의 합병을 시도함에 있어서 국내 인력조정 반대에 부딪쳐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유럽연합(EU)은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바나나 통상마찰에서 보듯이 시장개방에 소극적이다. 한국은 내정간섭에 가까운 미국의 통상압력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래도 미국 시장은 크고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다. 현상의 실체를 파악하려면 도플러 효과를 감안해야 한다. 한번 떠들어대다가 조용해지는 매스컴의 생리를 넘어서야 뉴스 실상에 접근할 수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