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만남 .. 김원치 <서울고등검찰청 차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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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란 무엇인가? 대상을 선택해 만날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만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검사와 피의자의 관계도 이러한 만남에서 출발한다. 그 만남을 어떻게 시작해야할까. 추상열일. 사람들은 검찰의 정신을 이렇게 말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엄격함 그것만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혹리에 불과하다. 검사의 도는 그 이상의 것이여야한다. 범죄에 추상같으면서도 그것을 저지른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나 연민의 정이 없으면 그는 참된 검사가 아니다. 굶주진 식구들을 위해 물건을 훔친 어느 가장인 피의자를 겉으로 크게 꾸짖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눈물어린 동정을 할 수 없다면 그는 검사가 되어서는 안된다. 일본의 전 검사총장 이토시게키의 회고담을 들어보자. 이토는 조선의옥사건에서 당시 조선공업회 부회장인 도코오씨를 조사했다. 그의 집을 수색했을 때 검소한 살림살이라던가 집으로 우송된 봉투를 뒤집어서 발신용 봉투로 재활용하거나 전철로 출퇴근하는 그에게서 이토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게다가 추운 겨울날 목도리를 한 채로 조사를 받도록 권유해도 그는 언제나 방 입구에서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벗고 단정하게 앉아 조사받았다. 질문에 대한 의연하고 꾸밈없는 진술은 이토를 감동시켰다. 그들은 서로를 존경하고 있었다. 먼훗날 그들은 다시 만났다. 이토는 검사총장으로서 도코오는 우리나라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경단련명예회장으로서. 도코오는 당시 지팡이에 의지한채 일어서서 "축하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계속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범죄의 수사란 피의자에 대한 전인격적인 판단을 해야하는 힘든 작업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인간과 인간사이의 일이며 인간에 관한 일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