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신 르네상스] "1등산업/1등상품 만든다"

연간 2백63억달러 매출에 61억달러(98년기준)의 순이익을 내는 세계최대반도체회사 인텔. 인텔은 지난 68년 창립이래 컴퓨터 반도체 분야에서 계속해 세계 최초의제품을 발표하면서 고성장을 구가해 왔다. 고집적화된 D램, 컴퓨터 연산기능을 하나의 칩으로 만든 마이크로 프로세서,입력과 삭제가 가능하게 한 EP룸 등 컴퓨터 발전의 역사는 인텔의 제품개발사와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인텔이 지난 30년간 단 한차례의 시련도 없이 줄곧 고성장을 지속해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대부분 기업들이 그러하듯 인텔도 80년대 들어 회사 기반이 흔들릴 정도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80년대 중반 일본 반도체업체들의 저가 물량 공세와 때맞춰 찾아온 불황으로 인텔의 D램 사업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일본업체들은 인텔의 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해 86년 들어선 세계 D램 시장의 85%까지 차지하게 됐으며 페어차일드, RCA, 시그넥스 등 미국의 반도체업체들은 잇달아 D램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인텔은 86년 2억달러의 천문학적 적자를 기록했으며 7천2백명의 근로자를 감원하고 2개의 공장을 폐쇄시켜야 했다. 결국 인텔도 많은 다른 미국업체들처럼 D램 사업에서 철수하게 된다. 인텔의 공동창업자였던 당시 무어 회장과 그로브 사장은 인텔이 D램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D램 회사중 하나일 뿐이라는 현실을 인식하고 사업 철수라는 단안을 내린 것이다. D램 사업 포기와 함께 인텔이 모든 반도체 제품군을 생산해야 한다는 그동안의 신념도 버렸다. 대신 무어와 그로브는 단 한가지 제품, 미래 고부가 제품인 마이크로 프로세서(MPU)에 회사의 모든 자원을 집중해 이 분야에서 세계 1위업체가 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런 전략아래 엄청난 적자가 난 86년에도 연구개발비만 매출액의 18%선인 2억달러를 투자하는등 대규모 투자로 3~4년을 주기로 차세대 제품을 신속하게 출시했다. 이 전략은 주효해 사업전환 1년만인 87년 매출은 51% 늘어났고 2억5천만달러의 흑자로 돌아섰다. 사업전환 6년째인 92년 인텔은 마침내 MPU 세계시장의 85%를 차지하는 반도체 1위업체로 올라서게 됐다. 인텔의 역사가 주는 교훈은 "1등 상품, 1등 산업을 만들라"는 것이다. 백화점식 경영 시대는 지나고 집중과 선택으로 1등 기업만이 생존하는 시대가 됐다. 전 산업 분야, 모든 상품에서 1위를 하려고 덤비다간 어디에서도 뒤처지는 기업이 되고 만다. 잘하는 분야에 경영자원을 집중해 승부하는 전략, 이것이 바로 "선택과 집중"이다. 이처럼 기업이 전략 분야를 선택하고 회사의 자원을 집중하지 않을수 없게 된데는 "글로벌 체제"라는 경영 환경 변화에 기인한다. 경제적 국경이 사라지고 세계 경제가 통합돼감에 따라 이제까지 한 국가 울타리내에서 벌어지던 경쟁이 지구촌 차원으로 확대된 것이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의미다. 극심한 경쟁은 예전처럼 여러 분야 사업을 동시에 성공하기 어렵게 만든다. 한 분야를 잘하기도 힘들게 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R&D(연구개발)의 거대화다. 미래 산업과 제품은 대체로 과거와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거액의 투자비를 요구하고 있다. 정보통신 생명공학 신소재 반도체등 미래 주력산업으로 꼽히는 업종 모두가 그렇다. 이는 기업입장으로 볼때 여러 사업을 동시에 벌일 기회가 사라져 감을 뜻한다. 선택과 집중은 국가 차원에서도 적용된다. 21세기엔 국가도 가용자원을 전략분야에 집중투입하고 그 분야를 세계 1위로 만들어야 생존이 보장된다. 이미 선진국은 이런 전략을 채택해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정보통신과 문화산업,금융산업,우주항공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들수 있으며 일본은 전자 기계 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를 꼽을수 있다. 이탈리아는 섬유와 패션, 프랑스는 관광과 기호상품 분야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 작은 상품 하나에서라도 세계 1위 기업이 되고 세계 1위 기업과 산업을 많이 갖는 나라가 되는 것, 이것이 21세기 생존의 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