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저널] '투신사의 암'

미국 뉴욕증시의 다우존스지수가 "10,000 고지"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가운데 한국시장도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는 기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가장 반갑게 받아들여야 할 사실은 자본시장의 회복은 투신사의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환란을 맞으며 투신사만큼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든 문제도 없었다. 어떤 의미에선 은행권보다도 더 큰 암덩어리를 지니고 있는 투신사에 대한 문제는 손도 대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투자자들의 인출사태를 유발, 금융공황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투신사의 자산은 자그만치 2백30조원에 이른다. 그야말로 공룡이다. 따라서 이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없는 금융개혁은 미완성일 수 밖에 없다. 이제 시장과 투자자들의 심리 모두 어느정도 안정돼 가는 상황이다. 개혁은 때를 놓치면 물거품이 된다는 시각에서 이제는 투신사가 논의의 초점일 차례가 됐다. 이 과정에서 투신사 수익률의 실체를 점검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투신사에 대한 일반의 올바른 인식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투신사의 수익률은 주가지수 상승률과 다를 바 없다. 어느 포트폴리오건 그 종목수가 10에서 15개만 되어도 시장상황과 "거의 같아진다"는 사실은 수많은 통계자료를 통해 증명돼 왔다. 종목수가 더 많아지면 시장의 부침과 동일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따라서 수십에서 수백개 종목에 투자하는 투신사의 펀드 수익률이 시장수익률과 같아지라는 것은 더 설명이 필요없는 일이다. 물론 시장에서 이름 꽤나 알려져 있다는 사람들은 이같은 교과서적 설명을 비웃는다. 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가지수상승률(시장수익률) 보다 우월한 수익률을 엮어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temporary)" 결과에 불과할 뿐이다. 어느 누구고 "지속적으로(consistently)" 탁월한 수익률을 유지하지는 못한다는 것이 통계의 설명이다. 이른바 자본시장이론에서 "시장을 이기기(beat-the-market)는 극히 어렵다"는 결론이 바로 그것이다. 월 스트리트의 귀재로 불리는 피터 린치는 최근들어 그가 관여하는 피델리티연금성장펀드(retirement growth fund)의 연 수익률이 35.89%에 이르렀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스스로도 5년과 10년 평균수익률은 이보다 못한 16.76%와 17.46%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광고에 포함시켜 자인하고 있다. 시장을 이기기 어렵다는 결론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만사 고저장단과 새옹지마가 있게 마련이라는 점에서 쉽게 이해되는 일이다. 어느 투자자이건 그 운명은 시장(market)이라는 대양을 항해하는 "큰 배"의 부침에 맡겨져 있는 것이고 그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뜻이다. 잔재주를 부릴 수 있는 손오공이었지만 삼장법사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었다는 말도 이와 유사한 얘기다. 우리시장이 환란이라는 풍랑을 만나 배(시장)가 침몰하는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도 꼼짝할 수 없었다는 것은 불과 수개월전의 경험이기도 하다. 이런 틀에서 볼 때 투신사의 과장선전이나 이에 부화뇌동하는 막연한 환상은불식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투신사에 대한 지나친 평가절하 또한 소망스럽지 못하다. 이 종목 저 종목 골라가며 분산투자를 할만큼 큰 자금을 가지지 못한 소액투자자의 경우, 투신사라는 매개체를 통해 시장 포트폴리오(market portfolio)에 "비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는 점 등 투신사가 경제사회에 기여하는 공헌은 과소평가하기 힘들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 투신사들이 중병에 걸려 있다는 점이다. 물론 많은 부분 내부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 사실이지만 정부가 자기금고 처럼 아무렇게나 쥐고 흔들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부의 간섭과 입김, 그리고 창구지도는 아직도 계속되고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투신사에 대한 치료와 개혁은 정부가 이같은 구태를 그만 두겠다는 다짐에서부터 출발되어야 할 지 모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