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역사관 변화의 원인 .. 정옥자 <서울대 교수>

정옥자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에는 많은 역사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 제목도 "거꾸로 읽은 우리 역사" "다시 찾는 우리 역사"라 하여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서와 다르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 우리가 배운 역사와 현재 새로 쓰는 역사가 무엇이 다르다는 것일까. 물론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혀 내거나 잘못 알려진 부분을 바로 알리려는 의도도 있지만 무엇보다 역사를 보는 눈이라 할수 있는 역사관이 달라졌다고 할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자료는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다만 그것을 보는 시각과 해석,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난 세월의 역사관은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제국주의에 입각한 역사관이다. 역사학계에서 쓰는 용어로 말하면 식민사관이다. 이 역사관의 특징은 모든 역사적 사실을 힘이라는 잣대로 본다는 점이다. 힘도 여러가지지만 무력을 최고가치로 삼는 것이 특징이다. 그 다음이 물적 기초, 즉 경제력이 중요가치이다. 부국강병이라는 근대적 이념에 근거하고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는 밀림의 법칙을 깔고 있다. 19세기말부터 서양이 동양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합리화 작업을 시작한 제국주의적 세계관은 여러 학문분야를 망라하고 있지만 특히 역사분야에서는 식민사관으로 확고한 이론의 틀을 만들어냈다. 한국사는 거기에 편승한 일제 어용학자들에 의해 식민사관으로 다시 서술됐다. 시대구분도 한국사의 내재적 발전모습을 무시한 채, 전쟁이라는 외부적 요인을 기점으로 삼고 모든 역사적 사실은 외래문화의 영향과 외부적 충격이라는 점에 중점을 두고 파악했다. 특히 조선시대에 대한 왜곡이 가장 심했다. 무력으로 남을 약탈하는 국가나 민족을 야만인으로 멸시하고 자급자족하는 안정된 농경 공동체사회를 이룩해 상호존중하는 예의의 나라, 도덕적 문화국가를 이상으로 삼았던 조선왕조는 "문약"하다고 평가절하됐다. 조선왕조는 현대와 정반대의 지향성과 가치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왜곡의 골도 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힘이 분출해 새 역사서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거기에는 옥석이 섞여 있고 역사를 상품화하려는 의도도 보이지만 식민사관으로 정체성이 해체돼버린 우리 역사, 잘못 해석된 우리 역사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열정의 소산으로 보아 큰 무리가 없겠고 "역사 바로 세우기"운동의 일환이라 생각된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목적은 과거를 반성해 현재의 자신을 바르게 인식하는데 목적이 있다. 자신이 어떤 발자취를 남기며 어디까지 와있는지 비춰보는 거울을 삐뚜로 놓고는 그 실상을 제대로 볼수 없다. 바로 놓은 거울로 현재를 직시하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짚어보는 나침반의 역할까지 기대하는 것이다. 역사를 현재의 거울이라 하고 역사야말로 미래를 위한 학문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톨릭교계가 벌이고 있는 한국교회사 정리와 병인양요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주목된다. 1866년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할 때 세명의 신자가 통역과 안내자로 프랑스군을 끌어들여 무고한 주민의 인권침해를 초래하고 외규장각도서까지약탈 방화한 결과에 대해 반성하고 그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민간차원에서 외규장각도서의 반환운동에 앞장서겠다는 다짐도 했다. 과거에 대한 반성없이 새로운 출발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아래 민족사 안에서 교회가 잘못한 부분은 인정하고 시비를 가릴것은 가리자는 것이다. 새로운 역사관을 모색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이러한 움직임은 제국주의에 의해 피폐해진 지구촌 문제를 극복해 바람직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기초작업으로 해석된다. 전통시대의 역사관은 춘추필법에 근거했다. 옳고 그른 것을 분명히 평가하는 시시비비정신이 춘추필법정신이므로 역사서는 윤리서의 역할까지 했다. 그 반동이 근대이후의 제국주의적 역사관이라면 이에 대한 반성과 변화의 움직임은 새로운 세계관과 그에 입각한 올바른 역사관이 정립되려는 조짐이라 생각된다. 투쟁과 혼란의 시대를 종식시키려는 징조로 해석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