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정욱 <과기부 장관>에 듣는다..과학기술은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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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 성장 일변도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과학기술로" "지금까지의 선진국 추종형에서 앞으로 미래 개척형.지구적 선도형으로" "공평한 연구비 배분에서공정한 지원으로"... 서정욱 과학기술부 장관의 새로운 철학이자 비전이다. 지난 3월 23일 취임후 처음 강조한 말도 "21세기를 준비하기 위한 과학기술계의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였다. "우물안을 벗어 난 세상 밖의 과학기술"로 방향 전환을 서둘러야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에 한국의 미래를 기약할수 있다는 지론이다. 지난 92년말 과기처 차관 자리를 떠난후 7년간 기업 경영자로 일해오다 다시 과기부로 돌아온 서 장관은 한국 과학기술의 구조조정에 어느 때보다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 -다시 과학기술부로 복귀하신 감회가 어떻습니까. "고향에 돌아온 기분입니다. 기업에 몸담았던 7년동안 세상구경 실컷 했습니다. 옛말에 "여행만한 교육이 없다"듯이 그동안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정부의 모순된 과학기술정책이나 출연연구소의 문제점 기업의 강점과 취약점등을 모두 피부로 느낄수 있었고 국민이 바라는 과학기술이 뭔지도 알게 됐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 과학기술의 문제는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그동안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는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과학기술은 여전히 우물 속에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개발도상국 시절의 관념에 얽매여 근시안적인 효율성만 추구하는 과학기술이었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국가경영의 절대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순을 지적하실수 있습니까. "지금까지 과학기술정책은 주로 물량 위주였습니다. 연구개발 투자를 언제까지 몇 %로 늘리겠다거나 어떤 분야에 얼마만큼 지원하겠다 이런 것 들이죠. 그러나 21세기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의 효율성을 추구하느냐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보다 뛰어난 컴퓨터시설을 국내 대학에 들여다 놓는다고 MIT같은 훌륭한 대학이 나옵니까. 아닙니다. 문제는 사람과 시스템입니다. 무작정 씨를 뿌린다고 열매가 잘 맺히는 게 아니지요. 뿌린 씨가 제대로 열매를 맺도록 관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동안 우리 과학기술정책은 수종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나무를 심어 숲만 푸르게 만들려 했던 겁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집을 짓고 장농을 짜는데 필요한 목재는 수입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과학기술 투자의 중복, 무질서, 낭비적인 요소들도 다 그런데서 나온 겁니다. 이제는 철저히 내실을 추구하는 과학기술정책을 펴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재임중에 "이것만은 꼭 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짚듯 정책을 바꿀 수는 없는 겁니다. 다만 옳은 것이지만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것을 찾아내 빛을 보게 해주는데 힘쓸 겁니다. 무엇보다 연구현장에서 한눈 팔지 않고 묵묵히 제 일만 하는 과학기술자들에게 관심을 쏟을 생각입니다. 그늘에서 생색내지 않고 밤낮없이 연구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진짜 경쟁력을 갖는 기술자입니다. 또 그래야 과학기술자가 존경받는 사회가 만들어집니다" -정부조직개편이 있을때마다 과기부는 존폐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과학기술 환경이 바뀐만큼 과기부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옳은 지적입니다. 이제까지 과기부는 TV나 냉장고 자동차등을 잘 만드는 재래산업을 지원하는데 기여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21세기 과기부는 지식정보사회를 선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부처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산업사회의 구성요소가 사람(man) 기계(machine) 돈(money)이었다면 지식정보사회에서는 두뇌(human)와 지식(knowledge) 경영능력(management)입니다. 이제 과기부는 지식과 정보를 앞서 창출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맡을 생각입니다" -지식정보사회는 구호만 외쳐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나갈 생각이신지요. "지식정보사회는 두뇌와 시스템이 갖춰져야 가능합니다. 두뇌를 이끄는 곳은 대학과 연구소입니다. 그동안 과기부는 출연연구소 중심의 과학기술정책을 펴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원자력등 국가안보와 관련된 부분을 제외한 모든 연구개발활동에 각 연구주체들간 공개경쟁 원리를 도입할 생각입니다. 특히 과학기술의 토양이 되는 대학과 민간연구소를 육성하는 데 우선순위를 둘 것입니다. 지식정보사회에서의 산업기지는 바로 대학과 기업연구소입니다. 대학에 우수과학연구센터(SRC)와 우수공학연구센터(ERC), 우수지역연구센터(RRC)와 같은 기반을 더욱 확충하고 지원해나갈 계획입니다. 서울과 지방간의 격차도 줄여나갈 것입니다. 지방에 있는 연구중심 대학이나 연구소가 서울과는 멀지만 세계와는 더욱 가까운 곳이 될수 있도록 만들 생각입니다. 과학기술 영재를 발굴해내는 것도 절실합니다. 영재교육은 단순 주입식교육을 통해 인위적으로 수재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타고난 재능을 찾아내 길러주는 것이죠"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설치는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또 무슨 역할을 하게 되는지요. "7년전 과기처를 떠날때 제 소원이 바로 국과위같은 종합조정조직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 소원이 이뤄졌습니다. 그동안 과학기술 정책은 투자만 늘리려 했지 성과를 올바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없었어요. 부처간 나눠먹기식 예산집행도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 과학기술도 장년기에 접어든만큼 달라져야 합니다. 국과위는 과학기술 정책 수립및 조정뿐 아니라 예산의 분배,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우선순위 등을 심의 조정해 미래 지식정보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됩니다" -연구성과를 평가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객관성이나 공정성이 뒷받침돼야 하니까요. "그동안 우리는 연구성과에 대해 무조건 A,B학점만 줘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연구성과에도 경쟁 개념을 도입할 것입니다. 중간평가해 지원할 것은 계속 지원하고 탈락시킬 것은 중도하차시켜야 합니다. 기업연구소나 대학을 보면 경륜과 능력을 가진 숨은 실력자가 많습니다. 평가는 바로 이들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연구개발에 성공해본 과학기술자가 제대로 된 평가를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비 지원방식도 그동안의 "공평원칙(equality-base)"에서 "공정원칙(equity-base)"로 개혁할 생각입니다. 연구능력이 뛰어나면 그만큼 연구비를 많이 따내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일선 연구원들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연구 현장에서는 비전이 안보인다거나 자율성이 없다는 문제를 많이 제기하는데요. "연구 자율성이 저해된 것은 근본적으로 나눠주기식에다 일관성 없는 정책에서 나온 겁니다. 연구과제가 언제 중단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제대로 연구가 진행되겠습니까. 따라서 경쟁의 원리와 정책의 지속성은 반드시 지킬 생각입니다" -성과 중심의 연구기관 평가에 치우치다 보면 기초과학에 소홀해지는 문제는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기초과학은 연구하자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실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초과학 연구가 이뤄지는 겁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노벨상을 휩쓸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바로 "실사구시" 과학정책 때문입니다. 가장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추구하면 그것이 기초과학으로 연결되는 겁니다" -한국의 과학기술 비전을 어떻게 세우고 계십니까. "20세기 과학기술은 혁명에 가까운 발전을 이뤘지만 엄청난 과오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인간성 상실 환경파괴 같은 문제지요. 더욱이 우리 과학기술은 선진국이 이룩한 것을 베끼는 무임승차(free-riding)에 급급했습니다. 이제는 기술개발의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 문화 환경등의 면도 고려해야합니다. 그동안 서구의 첨단기술 개발만 강조해왔으나 이제는 전통을 조화시키는 연구도 진행해야 합니다. 지금은 시장의 경계가 없어진 인터넷 시대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세계 1등만이 글로벌 스탠다드가 됩니다. 한가지만이라도 일류를 만들어 내는데 힘을 모을 것입니다" -취임 당시 "E-메일 ID가 없는 사람과는 상대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과학기술발전에 정보화는 핵심입니다. 정보화에 뒤떨어져서는 경쟁 자체가 성립이 안됩니다.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정보화 마인드를 갖추는게 중요합니다. 과학기술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더 그렇습니다" ----------------------------------------------------------------------- [ 서 장관 누구인가 ] 과학자로선 드물게 대학과 기업 연구소등을 두루 거쳐 국내 과학기술계의 실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이다. "과학기술을 알고 연구개발을 해본 행정가"라는 평판을 받는다. 세계 처음으로 이동전화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을 상용화시켰고 국산전전자교환기(TDX)를 개발한 주역이다. 국방과학연구소장 과기처차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 SK텔레콤사장.부회장을지내면서 행정및 경영수완도 충분히 인정받았다. 서 장관의 일욕심은 정평이 나있다. 자기 주장이 세고 밀어붙이는 힘이 강하다. 취임이후 단 하루도 밤 11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없다. 퇴근후에도 필요하면 바로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본다. "나의 선생님" 등 저서가 10여권에 이를 정도로 글쓰기를 좋아한다. 생활신조는 "부지런히 살자".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를 나와 미국 텍사스 A&M대학에서 전기전자공학박사학위를 받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