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마스터스] 노먼 "난 사라지지 않는다" .. 선두와 1타차

5분간 필사적으로 찾았다 세계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정밀한 샷이 요구된다는 12번홀(파3-1백54야드). 아멘코너(11-13번홀)의 정점인 이곳에서 그레그 노먼(44)은 8번아이언으로 샷을 했다. 그러나 볼은 무려 핀 왼쪽으로 무려 15야드나 오버, 재스민 덤블속으로 사라졌다. 노먼과 동반자인 리 잰슨 그리고 그들의 캐디들과 경기위원등 5명은 필사적으로 볼을 찾았다. 볼을 한두번 찾아보는가. 떨어지는 지점은 그들 모두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노먼등은 작은 나무하나를 지목, 이잡듯이 헤쳤다. 그러나 볼은 어디에도 없었다. 경기위원이 5분을 알리며 로스트 볼. 원위치(티잉그라운드)에서 3타째를 치기위해 벤호건 브리지를 다시 건너오는노먼의 심정이 어떠 했겠는가. 그 상황은 "아주 잘해야" 더블보기를 의미했다. 17m 넣으며 골든벨 타종 문제는 더블보기라는 스코어 자체보다 그 상징성에 있었다. 12번홀은 오거스타를 대표하는 홀. 거기서 더블보기를 하고도 과연 우승할수 있는가. 노먼의 "마스터스 불운 악몽"이 다시 피어 오르는 것은 아닌가. 노먼은 다시 8번아이언으로 쳤다. 너무도 다행히 서드샷은 핀 왼쪽 7m에 멈춰섰다. 노먼 팬들은 거기서 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다음 장면은 열광 그 자체. 보기 퍼트가 홀 한가운데로 떨어진 것이다. 그것은 홀인원보다 값진 보기였다. 노먼의 단독2위 포지션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만약 그가 우승한다면 이날의 골든 벨(황금종, 12번홀의 별칭) "보기 타종"이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좌절로 점철된 메이저 인생 이제까지의 노먼은 "마스터즈 좌절, 메이저 불운"이 인생의 전부였다. 메이저에서는 2위를 7번이나 했는데 그중 마스터스 2위가 세번(86,87,96년)이었다. -86년 =3라운드까지 선두였던 노먼은 최종라운드에서도 17번홀까지 공동선두를 유지했다. 그러나 18번홀에서의 세컨드샷이 그린 오른편 관중쪽으로 날며 보기. 최종일 스코어는 2언더파 70타(4R합계 8언더파 2백80타)로 보통의 흐름으로는 우승할만한 "인내"였다. 우승자는 잭 니클로스. 당시 46세의 니클로스는 15번홀부터 18번홀까지 믿기지 않게도 "이글-버디-버디-파"로 솟구쳐 올랐다. 니클로스의 최종라운드 65타는 노먼 불운의 시작이었다. -87년 =노먼은 래리 마이즈와 연장에서 맞붙었다. 10번홀(파4)에서 노먼은 그린 에지에 볼을 안착시키고 있었다. 파는 무난한 상황. 반면 마이즈의 볼은 그린 오른편으로 40야드이상 벗어나 있었다. 누가봐도 노먼의 우승. 그러나 마이즈는 기적과 같이 그 칩샷을 그대로 홀인 시키며 버디를 잡았다. 다른 선수들이 평생 한번 당할까 말까한 "메이저 해프닝"은 노먼앞에만 다시 나타났다. -96년 =3라운드까지 노먼의 6타차 단독선두는 최종일 78타로 물거품이 됐다. 우승은 67타를 친 닉 팔도. 그가 인정받는 이유 노먼의 좌절은 이밖에도 숱하다. 86년 4개메이저대회 전부에서 선두로 마지막라운드를 맞이 했으나 우승은 브리티시오픈 한번뿐이었다(브리티시에선 93년 두번째 정상). 86년 USPGA선수권에선 봅 트웨이의 역시 "기적 같은"벙커샷 버디로 2위였고 93년 같은대회 연장에선 폴 에이징거에게 패했다. 노먼의 위대함, 그리고 팬들이 그를 인정하는 것은 바로 그같은 "몰락"때문이다. 인간으로서 결코 이겨내기 힘든 좌절에도 불구, 노먼은 여전히 골프다운 골프를 치고 있고 여전히 골프를 사랑하고 있다. 골수 팬들의 존재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 "불운의 역사"가 최종일 다시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지 않을수 있는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