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저널] '웹 사이트 외교'

지난해 국회의원들이 워싱턴의 한국대사관에 대한 국정감사를 벌일 때의 일이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외교관들에게 일장 훈시를 했다. 그는 "워싱턴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다 귀국하려는 시점에 공항까지 찾아와 작별을 아쉬워할 정도로 가깝게 지낸 미국인 친구가 몇 명이나 될 것 같으냐"고 참석한 외교관들에게 물었다. 그러면서 "한국 외교관들은 밥을 먹을때도 골프를 칠때로 그저 한국인들하고만 어울린다는데 그게 사실이냐"고 다그쳤다. 지난주 미국의 대표적 농촌이라고 할 수 있는 캔사스 주 로렌스시에서는 한 재미있는 세미나가 열렸다. "동아시아를 공략하려면"(Doing Business in East Asia)이란 주제로 열린 이 세미나는 이 지역 기업 경영인들은 물론 주정부 관리, 대학생을 대상으로 동아시아 3국 즉 일본, 중국, 한국을 소개하기 위한 자리였다. 주룽지 중국총리의 방미에 맞춰진 행사이기도 했다. 기회를 놓칠세라 일본과 중국사람들이 이곳에 기울이는 열성과 또 이를 받아들이는 미국인들의 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반면 한국을 소개하는 주최측의 내용과 발표형식은 썰렁함 그 자체였다. "한국이 캔사스로부터 매년 사가는 농산품등 물건은 규모면에서 캐나다 일본맥시코에 이어 4번째로 많은 양이다. 이른바 큰 손인 셈이다. 이에비해 중국이 캔사스로부터 사가는 양은 20위권을 멤돌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정작 신경을 써야 할 대상은 중국보다는 오히려 한국이었다. 하지만한국 관련 발표를 위해 누구에게 접근해야 할지 몰랐다"는 것이 주최측의 설명이었다. "또 한국관련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얼마든지 정보를 구해 참석자들에게 배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도 한국관련 발표가 부실하게 된 한 요인이다. 하지만 한국 관련 자료들이 영어로 쓰여 있는 것이 거의 없고 대부분 한글로만 되어 있다는 것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는 푸념도 늘어놓았다. 이제 세계는 바야흐로 웹사이트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미 웹사이트 하나의 가치가 수십억에서 수백억달러에 이르는 것도 적지 않다. e베이나 아메리카온라인(AOL), 아마존 등은 그 대표적인 예다. 물론 한국에도 웹사이트는 많다. 그러나 이른바 "앵글로 색슨 자본주의 시대"에 영어로 쓰여진 세련된 웹사이트가 아니고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외교통상부는 외국인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부처다. 한국인이 한국의 외교정책을 살펴보자고 웹사이트를 찾아들어가는 경우보다는 외국인이 한국외교와 한국관련 정보를 찾아보자고 들어오는 경우를 먼저 생각해야 옳다. 따라서 외교부 웹사이트는 한글보다는 영어위주로 운영되는 것이 당연하다. 한글로 쓰여진 "내무부성 외무부" 웹사이트는 지양되어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 얘기다. 좋은 웹사이트로 평가받으려면 내용이 최신자료로 끊임없이 바뀌어야(Update)함은 물론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들어선 지 오래되었지만 한국 외교 관련 웹사이트는 과거 김영삼 정부의 외교정책이 현 정부의 노선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다. 이미 역사적 사실이 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의 당위성을 주장한 연설문만 덜렁 올려놓은 것도 있었다. 최근 국내 언론들이 외무부 웹사이트를 비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연유한 것이다. 잘 만들어진 웹사이트 하나가 경우에 따라서는 수백명의 외교관보다 나을 수있다는 주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영문 웹사이트의 질적 개선과 확대만큼 중차대한 국가적 과제도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서 영어잘하고 능력있는 외교관이 웹사이트 업데이트라는 단순한 전산작업에 붙들려 있을 리 없다. 이런 배경에서 살펴보면 외교부의 웹사이트가 소홀하게 다루어진 것은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산물인지도 모른다. 그 구조를 바꾸지 않은 한 사각지대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결론은 자명하다. 외무부 웹사이트 사건을 교훈삼아 영문 웹사이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 공헌도에 따라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형태로 우리 사회의 인식, 인사, 조직, 경제적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