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작지만 강한 기업

덴마크 중부의 소도시 베아링브로. 여기에는 도시이름 만큼이나 낯선 "그런포스"라는 회사가 있다. 연간매출 75억2천만크로네(약 1조3천억원)로 중견기업이란 타이틀이 어울리는 기업이다. 이 회사는 중견기업 치고는 여러 면에서 놀라운 경영을 하고 있다. 우선 "스몰&글로벌". 덩치는 작지만 전세계 50여개국에 진출한 명실상부한 다국적 기업이다. 지난주 열린 "SQ"라는 신제품 발표 기자회견에 세계 각국 기자들을 수십명이나 초청했다. 더욱이 제품의 기술은 "펌프기술의 리더"라는 모토에 걸맞게 세계 톱수준을자랑한다. 자체 전자공장에서 펌프에 필요한 칩회로를 설계하고, 펌프제품을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계설비도 직접 디자인한다. 외형으로는 세계 3위의 펌프회사지만 순환펌프 제품은 세계시장의 50%이상을 점유하는 등 "작고 강한" 기능의 제품에서는 단연 톱을 인정받고 있다. 미국 "내셔널 드릴러스 바이어스 가이드"의 발행인인 도크 파이션은 "여러나라를 다니며 펌프제조 공정을 봤지만 그런포스의 제품은 혁신적인 수준"이라고 평했다. 비결은 R&D 투자. 이 회사는 지난해 R&D에 3억2천4백만크로네(5백80억원)를 투자했다. 세후이익(3억1천5백만크로네)보다 많은 액수다. 이런 선진경영을 하는 그런포스지만 아직 상장되지 않았다. 창업자 폴 듀 옌슨이 설립한 공익재단이 이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것. 여기에는 독특한 기업철학이 있다.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을 회사에 재투자하고, 건전한 재무풍토를 만들어성장과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서는 상장보다는 공익재단 소유로 하는게 낫다"(켈드 펜스텐 매드센 부사장)는 판단에서였다. 실제로 이 회사는 이익의 97~99%를 회사에 재투자한다. 그래서 차입경영이란 이 회사에서 낯선 단어다. 지난해 이 회사는 설비투자에 모두 5억5천3백만크로네를 썼다. 이중 밖에서 빌린 돈은 한푼도 없었다. 스벤드 폴스 부회장은 "그런포스의 목표는 최대규모가 아니라 세계 최우량펌프회사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소국인 덴마크를 경제강국으로 올려놓은 힘은 그런포스처럼 작지만글로벌하고 강한 기업에서 나온게 아닐까.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지고 있는 요즘 한국 산업계의 공백을 이런 튼튼한 중견기업들이 메워준다면..." 그런포스를 떠나며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