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최후의 만찬 .. 박훤구 <한국노동연구원장>

얼마전 읽은 책의 한 소절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의 일로 몹시 화가 났다. 그래서 다빈치는 그에게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해댔다. 그리고는 예수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 다시 붓을 들었다. 그러나 붓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화난 얼굴의 예수가 떠올랐고, 붓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에게도 화가 치밀었다. 마침내 그는 그림도구를 내려놓고 자신을 화나게 했던 그 사람에게 다시 돌아가 그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 사람도 다빈치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화실로 돌아온 다빈치는 그제서야 자신이 구상하던 예수의 얼굴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남에게 화풀이를 해서 속이 후련해지기 보다 화를 내고 오히려 마음의 평정을 잃게 되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얼마나 해가 되는지를 알게 해주는 짧은 글이다. 얼마전 한 국제학술대회에서 만난 외국의 학자와 한국의 노동운동에 대해 의견을 나눈 적이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아시아 여러나라에 비해 활발하고 파업의 빈도도 높은 것은 근본적으로 노사갈등을 유발하는 경제구조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우리의 국민성으로 흔히 지적되는 조급성, 반골기질 등과도 큰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지하철의 파업으로 노동현장이 크게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대립국면이 여러 사업장으로 확산될 가능성까지 높아 국민들이 불안한 시선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어렵사리 최악의 위기국면을 막 벗어나고 있는 우리경제를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시각도 불안하기만 하다. 마음의 평정을 잃은 다빈치가 화가 난 예수의 얼굴을 그리려 했던 것처럼 마음의 평정을 잃은 우리의 많은 사업장들이 어떤 제품을 만들어 낼지가 걱정이다. 우리 모두 하루 빨리 마음의 평정을 찾아야 할 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