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고금리 빚 조기상환 .. 은행권 거절에 '속앓이'

"다른 은행의 빚이나 갚아라" 기업들이 은행빚을 갚겠다는데도 은행들이 이를 거부하는 사례가 나타나고있다. 외자유치나 증자 등을 통해 끌어모은 돈으로 고금리 빚을 미리 상환한다는게기업들의 생각이다. 금리부담을 줄이려는 시도다. 그러나 은행들에게 거절당하고 있다. 은행들은 "우리 돈은 계속 쓰고 다른 은행의 대출이나 갚으라"고 종용하고있다. LG그룹의 한 계열사는 최근 외환은행으로부터 빌렸던 1억달러를 만기 이전에 갚기로 했다. 외자유치를 통해 조달한 돈으로 외화부채를 갚기 위해서였다. 재무구조 개선약정에 따라 분기별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빚을 조기에 상환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은행 담당자로부터 "대출 조기상환은 안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리보금리에 3%의 가산금리를 주고 조달한 자금인데 만기 이전에 갚으면 우린 어떡하느냐"는 은행직원의 하소연이었다. "우리 은행의 돈은 계속 쓰고 다른 은행의 빚을 갚으라"는 압력(?)까지 받아야 했다. 삼성그룹 계열사도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 5천만달러를 갚겠다고 은행측에 전달했으나 대답은 "노(No)"였다. "1년짜리 외화를 고금리로 조달했는데 만기 이전에 갚으면 은행은 뭐 먹고사느냐"는 핀잔만 들었다. 기업들은 최근 달러빚을 만기가 돌아오기 이전에 상환하려 하고 있다. 대외신용도가 높아지면서 외화자금 사정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리보금리에 5% 이상 가산금리를 줘야 달러를 구할수 있었던 기업들이 이제는 2%의 가산금리로도 얼마든지 빌릴수 있게 됐다. 여기에다 시중금리까지 하락해 외화금리보다 낮은 원화를 조달해서도 얼마든지 달러빚을 값을 수 있다. 은행들은 기업이 대출금을 미리 갚을 경우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기업에 외화자금을 빌려줄 때에는 외국의 금융기관으로부터 만기에 맞춰 달러를 꾸어오는데 해당기업이 빚을 조기상환하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외국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릴 때에는 차입기간을 정해야 하고 조기상환할 경우에는 벌칙성 수수료까지 물어야 한다"며 "기업이 조기상환하겠다는 것을 무작정 받아들일 수 만은 없다"고 말했다. 원화대출의 경우 사정은 더 심각하다. 은행들이 조기상환을 거절하는 정도가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돈을 빌려줄테니 다른 은행의 빚이나 갚아라"고 세일즈하고 있다. 기업대출을 유지하기 위한 쟁탈전까지 벌이는 양상이다. 유한양행은 최근 신한은행으로부터 연 7% 미만의 자금을 끌어와 한빛은행에갚으려 했다가 한바탕 곤욕을 치뤘다. "우리한테 이럴수 있느냐"는 항의에 시달렸다. 결국 한빛은행과 신한은행의 돈을 반반씩 쓰는 정도로 마무리할수 밖에 없었다. 삼영전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최근에는 모 기업이 "빚을 갚겠다"는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로비까지 했다. 금융감독원의 한 임원은 "S그룹의 한 계열사로부터 산업은행에서 받은 장기대출을 갚을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이 대출상환을 거부하고 있으니 압력을 좀 넣어 해결해 달라는 청탁이었다. 그는 "빚 빨리 갚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탁을 받은 것은 난생 처음"이라고 말했다. 5대그룹을 포함한 계열기업들은 재무구조개선 약정에 따라 올해말까지 부채비율을 2백%로 낮추어야 한다. 외자유치 자산매각 유상증자등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빚을 빨리 갚으려 하고 있다. 은행들은 이에 비해 자금운용이 어려워지고 기업금융이 급격히 위축될 것을우려하고 있다. 대출상환을 만류할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채비율 축소라는 큰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 조기상환을 대놓고 거부하지는 못하고 있다. 은행과 기업의 이해가 상충되면서 대출 조기상환이 금융계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