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살리기' 피말리는 1년 .. 금융구조조정 '빛과 그림자'

"살아남은 자의 슬픔, 떠난 사람의 고통, 그리고 새롭게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지난 1년간 금융계를 송두리채 뒤흔들었던 구조조정바람이 금융계에 다양한빛과 그림자를 남겼다. 금융구조조정으로 4만여명의 은행원들이 정들었던 일자리를 떠나야 했다. 남은 사람들은 과중한 업무를 뚫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피말리는 싸움을벌이고 있다. 구조조정의 태풍속으로 뛰어들어 희망의 싹을 틔원가는 사람들도 있다. 권복근(49) G&I인터내셔날 대표이사. 그는 지난해 1월19일을 잊을 수 없다. 14년간 일했던 제일은행을 명예퇴직이란 이름아래 떠났던 날이다.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한달 이상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권씨는 회고했다. 그는 일반업소에서 사용하는 공중전화기를 유통판매하는 회사를 차려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은행지점에서 근무했던게 도움이 됐다. 사람 만나는 것이 주요한 업무인 만큼 은행경력이 톡톡히 효과를 본 것. 자금을 운용하거나 장부계산을 하는 것도 남들보다는 손쉬웠다. 권씨는 "섭섭했지만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하지만 같이 떠난동료 대부분은 일자리를 못찾고 있는 신세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조직에최선을 다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사무실을 서울 당산동 제일은행지점 건물에 두고 있다. 가끔 자신의 고객을 제일은행과 거래하도록 유치활동을 할 정도로 아직도 옛 직장을 못잊고 있다. 구조조정의 태풍을 이겨낸 사람들의 심정도 다양하다. 살아 남았지만 정을 붙이지 못한 사람, 오히려 승진한 사람. 산업은행의 정해근(41) 금융공학팀장. 그는 지난해 런던지점에서 파생금융상품을 담당하는 과장으로 있다가 구조조정과정에서 팀장(차장급)으로 발탁됐다. 어찌보면 전우의 시체를 밟고 일어선 것 같아 쑥스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여유를 부릴 시간도 갖지 못했다. 오후 10시 이전에 퇴근한 날을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구조조정을 평가하는 그의 시각은 매섭다. "사전준비없이 강요당했기 때문에 업무량도 늘고 필요한 영역을 개발할 여력도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그동안 진행된 것은 쓸데없는 부분을 잘라내는데 그쳤다"며 "앞으로는 새로운 업무영역을 강화하는데 지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보화시스템 리스크매니지먼트 자산부채관리 등 금융기관이 갖춰야할 일들은 더욱 많아졌다는 것이다. 금융계에 뛰어든 패기만만한 젊은이도 있다. 황순재(33) 한미은행 자산운용팀 대리. 그는 지난해 10월께 입행했다. 당시 경쟁률은 40대 1. 미 인디애나주립대에서 MBA 과정을 마쳤던 그는 지금은 하루에 7천억원가량을 거래하는 펀드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그는 구조조정의 아픔을 느끼기보다는 희망에 차있다. 황 대리는 "은행들의 자산운용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요즘은 경쟁이 치열한 단위형신탁 상품을 맡아 밤잠을 설칠 정도"라고 전문가답지 않게 너스레를 떤다. 금융인들이 겪은 구조조정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더 큰 고통이닥칠지 모른다. 그 속에서도 끊임없는 변신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