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한경 마케팅대회] 다산마케팅혁신상 : 삼성전자 '지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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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슘페터는 기업은 끊임없는 혁신을 해야 한다며 "기업가 정신"을 강조했다. 기업이 매년 똑같은 경제행위를 하는 것 같지만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함으로써 새 이윤을 창출하고 자본주의도 발전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혁신( Innovation )이란 단순한 기술적 발전외에 새로운 판로개척,신상품 개발, 혁신적인 경영조직의 출현 등을 포괄한 의미다. "99한경 마케팅 사례공모전"의 수상 기업들은 슘페터가 주장한 기업가 정신을 구현한 시장 선도자들이다. IMF사태라는 초유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이들은 소비자의 니즈를 잘 파악해 신상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마케팅기법으로 기업혁신을 추구해 왔다. 창조적 마케터의 소중함은 극심한 불황속에서 더욱 빛난다. 다산마케팅혁신상을 수상한 삼성전자의 "지펠"은 국내 최고급 냉장고시장을앞장서 개척한 선구자적 제품이다. 지펠의 성공사례는 특히 뛰어난 기술력과 차별화된 마케팅전략으로 외국제품에 점령당한 한국시장을 탈환했다는 점에서 귀감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고급 냉장고의 개발에 들어간 것은 지난 96년이다. 냉장고 세탁기등의 백색가전시장이 포화상태로 치닫는 상황에서 신규수요를 창출할 리딩제품을 찾던 중이었다. 인건비 등 생산원가의 상승으로 중.저가제품이 이미 한계를 보인 터라 결론은 자연스럽게 "최고급 프리미엄제품"으로 모아졌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6백l이상 대용량에 양문 여닫이식 도어와 자동제빙기능으로 얼음을 뚝뚝 만들어내는 디스펜서를 갖춘 대형 냉장고는 외국제품의 독무대였다. 제너럴일렉트릭(GE) 월풀 등 이름만 들어도 주눅이 드는 다국적 기업들이 국내시장의 98%를 점유하고 있었다. 삼성은 먼저 시장조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월소득 3백만원 이상에 40평이 넘는 대형 아파트에 거주하는 35~50세의 고소득층을 겨냥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외국제품들은 소음이 많고 전력낭비가 심하며 애프터서비스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알아냈다. 삼성은 세계 최고의 냉각기술과 첨단 생산설비를 갖춘 광주공장을 보유하고 있었다. 기술력과 한국소비자를 잘 안다는 장점도 가졌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외제 선호에 젖은 소비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인가, 시장규모가 작은 만큼 수지타산은 맞춰질 것인가 등의 회의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더이상 늦출 수는 없었다. 최고경영자의 용단이 내려졌고 삼성은 14개월만에 용량 대비 세계 최저 소음(28dB)과 최저 소비전력(58kW)을 갖춘 명품을 만들어냈다. 냉각시간도 외제에 비해 절반으로 줄였고 세계 최초로 상.하 독립냉각방식을채택했다. 97년 하반기 신제품은 지펠( zipel )이란 이름으로 탄생했다. "최고"라는 뜻의 독일어 기펠( gipfel )에서 따왔지만 발음을 편하게 하고 장차 세계시장으로의 수출까지 염두에 두고 브랜드를 지었다. 삼성은 마케팅에서도 독창적인 기법을 도입했다. 삼성이란 회사명을 자제하고 "지펠"을 강하게 알리는 개별브랜드 전략과 함께 광고에서도 고급이미지를 한껏 과시했다. 구매가능성이 있는 고객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집중공략하는 DB마케팅은 물론 외국인 도우미를 동원한 프로모션을 구사했다. 전담 서비스맨을 지정, 애프터서비스를 강화한 것은 물론이다. 지펠 런칭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신제품은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LG전자의 "디오스" 등 경쟁제품이 잇달아 터져나왔다. 삼성은 IMF경제위기로 소비시장이 얼어붙은 98년에도 3만대의 지펠을 판매해30%의 신장률을 기록했다. 올들어서도 지펠을 생산하는 광주공장은 생산라인이 풀가동되고 있다. 올해 국내 대형냉장고 시장은 8만5천대 규모로 추산된다. 이중 삼성 LG 등 국산브랜드의 제품이 7만대로 80%를 점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1년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변화다. 지펠과 디오스는 지난해 4만여대를 미국 유럽 등지로 수출해 냉장고 본고장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삼성전자 지펠의 성공사례는 모험을 극복하는 용기와 과학적인 마케팅전략을갖춘 기업이 성공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일깨운 쾌거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