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면톱] 퇴직금 뭉칫돈 30조..소비/증시 불붙였다..기획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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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경기론"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정리해고 과정에서 풀린 무려 21조원의 퇴직금과 올해 나간 중간정산 퇴직금이 금융과 실물시장을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요즘들어서는 금융시장과 증권시장을 한바퀴 돌아나온 퇴직금이 소비와 부동산 쪽으로 흐르는 움직임도 확연해지고 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생긴 "뭉칫돈"은 경기회생에 도움이 됐건 아니건간에 결국 거품으로 귀착되는 경우가 많아 우려를 남긴다. 과거 금융실명제 때 처럼 잠깐 경기를 자극하다가 수그러들며 후유증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퇴직금을 장기산업자금화하는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일고 있다. 31일 국세청이 집계한 "98년 퇴직소득세 원천징수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금 지급액은 20조9천9백억원에 달했다. 이는 97년의 8조6천억원에 비해 2.4배에 달하는 규모다. 퇴직근로자 수는 82만6천명에서 1백21만9천명으로 47.6% 늘어났다. 퇴직자 수에 비해 퇴직금이 훨씬 더 많이 나간 것은 명예퇴직을 실시하면서위로금을 얹어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올해도 계속되는 퇴직과 중간정산 퇴직금까지 합치면 작년 이후의전체 퇴직금규모는 30조원에 달한다는게 국세청의 추산이다. 퇴직금 30조원은 국내 상장주식 싯가총액(28일 현재 2백5조3천1백26억원)의15%에 달하는 규모다. 증시 고객예탁금(8조3천9백20억원)의 3.5배다. 금융과 증권시장의 판도를 뒤바꾸기에 충분한 변수다. 실제로 작년 상반기 은행 정기예금과 신종적립신탁, 하반기엔 단기공사채형 수익증권, 올들어서는 증시예탁금과 뮤추얼펀드 유입자금이 폭증했다. 시차를 두고 이어진 이동자금의 경로를 추적하면 상당부분은 퇴직금으로 드러난다. 작년 하반기 이후 새로 들어선 음식점과 도소매점포 창업자들도 대부분이 명예퇴직자들이었다. 요즘은 소비자금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도시근로자 가계의 씀씀이가 그렇다. 올 1.4분기의 경우 도시근로자들의 근로소득은 5.5% 줄었다. 하지만 소비지출은 8.9% 증가하며 IMF이후 처음으로 증가세를 기록했다. 퇴직금 등 비경상소득이 46.8%나 늘어난 때문이다. 최근들어 아파트분양 시장에 과열조짐이 일고 있는 이면에도 증시에서 한목 잡았거나 증시활황을 노친 퇴직금 유입이 감지된다.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들은 "뭉칫돈이 장기적으로 국가경제에 도움이 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며 "퇴직금이 단기고수익을 좇지 않고 장기산업자금으로 쓰일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부동산 등 실물투기로 옮겨 붙을 땐 80년대에 겪었던 투기열풍으로 번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