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증권업계의 광고계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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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계엄령" 가상 정치 소설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증권회사와 투자신탁회사들이 겪고 있는 실제상황이다. 증권회사나 투자신탁회사의 광고팀들은 자신들의 요즘 처지를 계엄령 상황에비유한다. 금융감독기관이 간접투자상품의 "뻥튀기" 광고를 근절하겠다고 나선 이후 갈수록 금지 및 지시사항이 누적돼 이젠 계엄령 상황을 방불케 한다는 하소연이다. 증권회사나 투신사가 새 간접투자상품을 광고하려면 투자신탁협회가 하달한 지침을 지켜야 한다. 민간협회 차원의 지침이 아니라 금융감독원이 배후에서 조종해 보낸 명령이라는 것을 증권사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다. 본능적으로 광고팀 실무자는 광고문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지침에 어긋나는 구절이 나올까 노심초사 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금감원이 투신협회를 통해 보낸 지침엔 명료하지 않은 구석도 있어 증권사의 광고 만들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예를 들어 금감원이 지난달 20일 보낸 공문에는 "감정이나 애국심에 호소하는 행위나 문구를 넣어서는 안된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증권사는 지침을 준수하고 애국심에 호소하는 문구가 없는지를 수차례 점검한 후 중요한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바로 "심의필 도장"이다. 지침을 잘 준수한 광고라는 확인증을 투신협회에서 받지 못하면 광고를 내보낼 수 없다. 이 와중에 증권사에 대해선 증권업협회까지 자기네 심의필을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투신상품(간접투자상품)일지라도 증권회사가 광고를 만들어 내보내면 증권업협회 심의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결국 증권사는 투신협회와 증권업협회에서 심의필을 받는 "이중과세"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심의필을 받고 광고에 막 들어가려는 건에 대해서도 금감원이 뒤늦게수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는 게 증권사측의 귀띔이다. 이 촌극의 연출자인 금융감독원은 증권 및 투신업계의 과장 광고가 문제라고수차례 밝혀왔다. 오랫동안 근절대책에 골몰해왔으며 철저한 감독밖에 대안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래도 심의필과 모호한 조항이 있는 지침을 감독의 도구로 삼는 금감원의 "증권기관 감독"은 볼썽사납다. 옛날과 다른 세련된 감독기법을 강조해온 이헌재 금감원장의 지침을 금감원이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를 감독할 때가 온 것같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