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옷 로비' 영화 감상

주연 이형자 연정희, 조연 배정숙 정일순, 기타 여인1 여인2... 지난달 25일부터 극찬리에 상영된 영화 "부인들 옷로비 벌였네"가 막을 내렸다. 상영기간은 9일간으로 극히 짧았지만 이 영화는 관객동원면에서 "쉬리"를 능가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흥행면에서 "부인들 옷로비..."는 히트작에서 없어서는 안될 "여자 권력 돈"의 3요소가 모두 들어가 첫 상영부터 시선잡기에 성공했다. 등장인물도 쟁쟁했다. 주인공들이 모두 여자여서 내용전개가 단순해 지기 쉬웠다. 그러나 출연진의 중량감으로 그 한계를 극복했다. 대그룹 회장의 부인, 현직 장관이자 전직 검찰총수의 아내, 전직 장관의 부인, 고급 부티크의 여사장... 중간중간에 종교와 자선사업 얘기도 끼여들었다. 도입부를 지난 뒤엔 으스스한 검찰이 등장한다. 그리고 사건은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이씨, 연씨가 잇따라 소환되고 배씨가 앰뷸런스에 실려 검찰청에 도착한다. 검찰조사를 받고 빠져나가는 연씨의 대역으로 여인1이 등장, 사건이 미궁에 빠지기도 했다. 엇갈리는 진술이 흘러 나오고 검찰은 상황을 더 헷갈리게 만들면서 관객들의시선을 완전히 붙잡는다. 이 대목에서 검찰이 특정인을 싸고 돌아 관객들의 화를 돋우기도 한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엔 영화 "무궁화꽃이 피었다"처럼 대통령이 등장해 방향을잡아준다. 이윽고 결말. "대형 정치스캔들"로 시작해 희대의 관객을 끌어모았던 이 영화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는 "사기 미수극"으로 막을 내린다. 주연들은 유유히 검찰청사를 빠져 나가고 병상에 누운 배씨가 "왜 나만..."이라고 소리치는 오버랩 장면 위로 자막이 오른다. 관객들의 평은 한결같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였다는 반응이다. 그럴줄 알았다는 얘기다. "이게 바로 한국영화가 성공하지 못하는 까닭"이라고 입을 모은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힘없는 사람이 주연이고 권력자가 조연이다. 주연은 온갖 어려움을 뚫고 권력중심의 비리를 파헤친다. 끝내 권력자를 쓰러뜨린다. 그래서 힘없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하지만 한국영화에선 거꾸로다. 언제나 권력자가 주연이다. 끝내 조연만 다친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난 뒤엔 허탈감만 안긴다. 영화는 끝나고 불은 켜졌는데 앞은 더 캄캄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