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관치중독증

태국의 환란극복 과정은 한국과 닮았다. 두나라 모두 경제위기의 암초에 걸리자 "IMF(국제통화기금)"란 한 배에 몸을실었다. 위기극복 처방이 환란초기 긴축에서 부양으로 선회한 사실도 비슷하다. 이를 통해 양국 모두 지난해 추락했던 경제성장률이 올들어 플러스로 반전됐다. 금리와 환율이 안정돼 기업 부도율이 위기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는 점도 마찬가지. 방콕에서도 경기가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그러나 태국과 한국의 처방간엔 한가지 극명한 차이점이 있다. 정부의 역할이 그것이다. "한국에선 정부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태국은 자유시장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태국경제의 회복속도가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더디게 느껴지는 것은 그래서다"(솜 차임 태국 재무부 기획.정책국장) 솜 차임 국장이 두나라 처방에 우열을 매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발언엔 강한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한국은 환란극복 과정에서 종종 정부가 시장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보여왔던 게 사실이다. DJ노믹스의 한 축인 "시장경제"가 무색할 정도였다. 경제 일각에서 "신관치"란 볼멘 소리가 튀어 나온 것도 그래서다. "환란 이후 시장이 기능을 못했기 때문에 정부가 "불가피하게"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관변 이코노미스트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이젠 상황이 개선된 만큼 처방도 달라져야 한다. 정부는 "시장의 감독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부가 더 이상 "채찍과 당근"을 양손에 들고 시장을 길들이는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는 얘기다. 환란이 한국경제에 가르친 귀중한 교훈이기도 하다. 한국경제가 정상궤도로 복귀하기 위해선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 시급하다. 이를 통해 관치라는 "보이는 손" 대신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경제에 자연스러운 선순환 구조가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관치는 마약과도 같다. 한번 맛들인 관치는 끊기가 어렵다. 중독성도 강해 시간이 갈수록 그 강도를 높여야 한다. "관치가 낫다"는 환각 증세까지 보인다. 그 사이에 경제 체질은 약화되고 산업 경쟁력은 떨어져간다. 아무리 훌륭한 관치도 시장보다는 열등하다는 사실을 정책당국은 명심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