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가스전 발견

중국과 우리의 몇몇 역사서에는 옛날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나오고 유징이 발견된 기록들이 있다. 명나라 때 편찬된 박물지 본초강목에는 "고려 땅에서 석유가 나온다.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데 빛깔이 검기가 칠과 같고, 유황냄새가 몹시난다"는 기록이 보인다. 송나라의 강여지가 쓴 작몽록은 "고평의 동쪽 수천리 지점에서 맹화유가 나온다"고 적고있다.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조에는 "경주 동해안쪽의 모지악이란 곳에 폭 4보,5척의 구덩이에서 불이 타기 시작하더니 비바람에 관계없이 연중 타오르다가 10월에야 그쳤다"고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세종때 영해부에서 땅이 탔고, 성종 14년에는 영해부 어느 구덩이에서 주야로 불을 뿜었고, 인조 15년에는 신라 문무왕이 호국룡이 되어 묻혔다는 대왕암이 불타올라 부수어 졌다고 했다. 이런 역사서를 믿었는지는 알 수없으나 일제말 민간인에 의해 석유개발이 처음 시도됐다. 경남 동래 구포출신인 정덕생은 1939년 진주시 장재동에 석유개발을 목적으로 광구를 출원, 지하 20m를 뚫다가 그만뒀다. 해방후에도 심심치않게 광구의 출원이 이어져 전남 해남군 송지면 일대,나주군 봉황면 일대, 경남 합천군 가회면 일대가 광구로 출원됐다. 한때는 서울 옥수동 한강 바닥에 천연가스가 있다며 광구로 지정, 50m를 굴착하다가 말았다. 그러나 우리의 석유개발사에 우뚝 남을 ''한국판 드레이크''는 경북 영일태생의 정성엽. 그는 63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건의서를 내고 영일 포항지역에서 정부가 석유시추에 나서도록 만든다. 65년 5월 31일에는 지하 4백m에서 가스가 분출해 모두를 흥분시킨다. 이 천연가스는 나중에 석유와 관계없는 것으로 판명이 났으나 이 사업은 우리의 대륙붕개발의 계기를 만들었다. 대륙붕개발에 나선지 33년만에 최근 울산 앞바다에서 5개월가량 쓸 수 있는 천연가스전을 발견했다. 옛 기록이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차제에 유전까지 찾아내 산유국에 당당히 끼였으면 좋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