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장관의 말바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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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후 6시께, 통일부 기자실에선 임동원 통일장관과 기자들간에 난데 없는 "발언 확인작업"이 벌어졌다. 임 장관이 이날 김대중 대통령 주최로 열린 성우회(퇴역 군장성들의 모임)오찬석상에서 한 말때문이다. 임 장관은 오찬장에서 "북한과의 베이징 예비접촉에서 장관급.총리급회담을갖기로 "내막적"으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장관이 공개석상에서 북과의 장관급회담을 기정사실화했다는 점, "내막적"이란 표현이 갖는 시사성때문에 기자들의 관심은 컷다. 발언의 진의를 캐묻는 기자들에게 임 장관은 "논의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다가 "합의할 것을 논의했다"고 번복하는 등 갈팡질팡했다. "그렇다면 아무런 합의도 없었느냐"는 질문에 "차관급회담에서 합의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며 개인적 "희망사항"임을 시사했다. 장관의 발언을 둘러싼 해프닝은 이튿날인 9일 까지도 계속됐다. 차관급회담의 실무자는 "장관급.총리급회담은 예비접촉에서 논의됐을 뿐"이라고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또 다른 당국자는 "국가적 이익이 걸려있는 이슈라는 점을 감안해 달라"고 보도자제를 요청했다. 물론 "국가이익"은 중요하다. 더구나 이번 차관급회담은 민족적 관심사인 "이산가족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협상의 진전정도에 따라선 남북관계에서의 일대 전환점이 마련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장관의 발언을 단순한 해프닝만으로 돌리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 임 장관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오랜기간 "햇볕정책"의 막후 기획자 역할을 해왔다. 대북협상의 실무자로 북과의 협상에도 나선 경험이 있다. "모든 것이 합의되기까지는 아무것도 합의되지 않은 것"이란 대북협상의 ABC를 모를 리 없다. 특히 진행형(on-going)협상에선 우리측 협상전략이나 제안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내막적 합의"사실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추측과 작문에 능하다고 비난받는 기자들도 "국민의 알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이같은 "신사협정"을 지킨다. 실제 내막적 합의가 있었고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면 밝히지 않는게 정도다. 합의가 없었는데 합의가 있었다는 식으로 얘기한 것이라면 실언에 해당한다. "정부 당국자들의 견해를 단순히 되뇌지 않고 독자적으로 옳고 그름을 천착해야 하는 것이 언론의 임무"(영국 언론인 조나산 덤블비)라는 경구가 그래서 더욱 새롭게 느껴진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0일자 ).